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5-12-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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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가 듣던 날에

2005년 2월16일 승욱이의 와우이식을 마치고 3월24일까지 난 승욱이를 낳은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 승욱이는 오른쪽 잔존 청력을 완전히 잃은 것에 대한 강한 불만과 잠자는 시간의 완전히 뒤바뀜과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은 앨러지로 온몸이 두드러기가 나서 밤새 울며 피가 나도록 긁고… 차라리 수술을 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후회로 정신적, 육체적, 신앙적으로 모든 것이 바닥상태였다. 또한 승욱이의 스페셜 스피치 선생님도 찾지 못한 상태라 여러 가지로 아주 복잡한 상황이었다.
3월26일 아침 예약된 시간에 병원으로 향하며 나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니 충혈된 눈에, 밤새도록 승욱이에게 시달려 짜증이 가득한 얼굴에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병원에는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과 통역사 캐롤씨가 함께 했고, 청역사인 ‘지나’ 그리고 ‘스텐톤’이 함께 했다. 승욱이는 새벽 6시반에서야 잠이 들었기에 유모차에서 연신 콜콜거리며 자고 있었다.
작은 방으로 모두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앞으로의 승욱이가 주의할 점과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컴퓨터와 승욱이 와우이식 수술한 것을 연결하여 승욱이가 최상의 조건에서 들을 수 있도록 채널을 맞추기 시작했다.
승욱이 귀 안에는 인공 달팽이관이 있는데 그 곳에 22개의 채널이 있다고 했다. 각 채널이 알아서 소리를 전달 받을 수 있게 해주는데 승욱이가 어떻게 해야 높은 소리, 낮은 소리, 폭이 넓은 소리, 폭이 좁은 소리 등을 잘 듣게 해 주나를 컴퓨터로 맞추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리고 있었다.
귀 안쪽으로 소리를 넣어줄 때마다 승욱이가 조금씩 움찔거리는 것이 듣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귀 안쪽으로 소리가 들어가니 승욱이는 잠에서 깨어나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한지 승욱이는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참이었다.
모든 채널을 다 맞춘 후, 의사가 말하길 “이제부터 승욱이가 승욱이의 수신기를 켜고 들을 겁니다. 모두 말씀을 하시지 마시고 승욱이 엄마만 제일 먼저 승욱이에게 말을 해주세요. 절대 승욱이를 붙잡지는 마시고 그냥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주세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모두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고, 또 비디오 카메라를 누군가 들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 말도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시키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그런 상황…
다들 내가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목소리를 가다듬고, 승욱이를 딱 쳐다보니 승욱이가 잠에서 깨어 있었다. 승욱이를 보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아무 말도 아직 안 했는데 벌써 눈에서는 왕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지난 힘든 시간들이 다 밀려오며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렸는데… 하는 그런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안녕! 승욱이! 정말 오래간만이네… 아니 처음인가? 이렇게 승욱이가 엄마 목소리를 제일 처음 듣게 돼서 엄마는 너무 기쁘다. 듣고 있니? 승욱아? 엄마 목소리 들려?”
유모차에 앉아 있던 승욱이가 내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듣는구나! 정말 듣고 있나봐!” 그 후 승욱이는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 소리를 들으면 크게 운다는데 승욱이는 얼굴 근육을 심하게 움직거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함께 있던 의사가 승욱이 너무 성격 터프하다고 한소리를 던지는 바람에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울지 않으려고 꾹 참는 승욱이의 얼굴이 비디오 카메라에 다 잡혔다.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면서 승욱이에게 인사를 하고 승욱이는 계속해서 몸을 떨고… 병원에서 나올 때는 승욱이가 소리를 듣는 것에 많이 익숙해서 나왔다. 허리에는 수신기를 차고, 귀에는 자석을 하나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여나 승욱이가 수신기를 빼버리면 어쩌나 걱정 또 걱정했는데 승욱이 수신기도 잘 차고 있고, 머리에 자석도 잘 달고 있다. 자신이 스스로 머리에 붙인 자석이 떨어질까 조심조심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 자석이 귀에서 떨어지면 소리가 안 들려지는 지를 벌써 알아버렸나 보다.
그동안 많이 바닥을 헤매던 내 자신도 모두 회복을 했다. 언제나 승욱이 때문에 울고, 웃고, 기쁘고, 감동 받고, 그리고 감사하고… 그래서 난 승욱이 엄마인 게 너무 좋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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