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인 공작부인’

2005-1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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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부인과 전직 외교관 ‘절제된 사랑’

‘풍경이 있는 방’과 ‘하워즈 엔드’ 등 문학적 지성과 감성이 풍부한 영화들을 만든 콤비 이스마일 머천트(제작)와 제임스 아이보리(감독)의 마지막 작품. 머천트의 유작이다.
2차대전 얼마 전 상하이에서 맺어진 몰락한 귀족부인과 전직 외교관의 관계를 그린 이 영화 역시 소설이 원작인데(카주오 이쉬구로) 영화가 너무 산문적이다. 왜 그렇게 감정을 죽이고 극적 리듬을 억제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나아가기 싫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미루적거려 속이 답답하다.
1936년 상하이. 러시아에서 혁명을 피해 온 공작부인 소피아(나타샤 리처드슨)는 어린 딸 카티야와 시댁 가족(바네사와 린 레드그레이브 조연)들과 함께 좁은 아파트에 살면서 클럽 댄서 겸 창녀로 생계를 이어간다. 소피아는 유일한 생계원인데도 가족들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세계 각국인들이 모여 벅적거리는 국제 도시의 이 싸구려 나이트클럽을 찾은 남자가 공습에 딸을 잃고 눈이먼 전직 미외교관 타드(레이드 화인스). 타드는 소피아의 딱한 처지를 엿듣고 그녀에게 자기가 새로 문을 열 클럽의 호스티스 자리를 제의한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1년 앞으로 넘어간다. 타드는 ‘백인 공작부인’이라는 이름의 클럽을 열고 소피아를 고용한다. 타드는 마음 깊이 소피아를 사랑하면서도 기를 쓰고 그녀를 멀리하고 소피아도 마찬가지. 타드는 과거 비극 때문에 눈뿐 아니라 가슴도 멀었다. 그러나 이것은 설득력이 모자란다.
한편 타드가 정체불명의 일본인 사업가 마추다(히로유키 사나다)를 알게 되면서 점증하는 상하이의 정치적 긴장 속에 말려든다.
일본군이 상하이를 침공하면서 소피아의 시댁들은 카티야를 데리고 홍콩으로 피난을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공습과 피난행렬의 와중에 타드는 소피아를 찾아 길을 헤맨다.
왕 카-와이의 영화를 많이 찍은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이 화려하지만 감정적 격동이 모자라는 드라마로 너무 길다. PG-13. 로열(310-477-5581) 등 일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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