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12-07 (수)
크게 작게
요리 심사위원

지난 토요일 LA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외국인 대상 한국음식 만들기 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나갔다. 이 대회는 작년 가을과 올 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콘테스트로, 그때마다 불려나가 심사를 했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그만큼 했으면 이력이 날만도 하건만 세상에 하고 많은 일 중에 못할 일이 음식 경연대회 심사위원이란 점을 하소연하고 싶다.
전문요리사들의 대회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대다수가 아마추어인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만들라 하고 그 맛을 보고 다니려니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하는 고충을 겪게되는 것이다.
이번 대회는 참가자가 크게 늘어 24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1회와 2회 때는 12~13명 정도였는데 그 두배가 되었다는 것은 곧 두배의 고문을 당하게 되리라는 예고였기 때문이다.(불행중 다행으로 당일 행사장엔 19명만 나왔다)
생각해보라. 모든 출전자들은 3시간동안 각각 최소한 3개 종목의 요리를 해야한다. 김치, 불고기, 김치 퓨전요리가 필수과목으로, 예를 들어 20명이 3개씩 한다 해도 심사위원들은 총 60가지 요리를 맛보아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출전자들이 3개씩만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김치와 불고기는 하나씩 하지만 김치 퓨전요리에 들어가면 한 사람이 4~5개씩 만들면서 다 맛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노력과 열성은 높이 평가하지만 일일이 먹어 보아야하는 심사위원으로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보는데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충은 김치를 맛보는 일이다. 일차 돌아다니면서 김치 담그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장차 맛볼 일이 큰 걱정으로 다가온다. 씻지도 않은 파, 양파, 배, 마늘을 껍질도 벗기지 않고 숭숭 썰어 넣는 것은 평범한 풍경이고, 김치와 어울리지 않는 외국 야채, 양념들까지 가져와서 집어넣는 것을 보면 한숨이 다 절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설탕 대신 시럽을 넣어 들쩍지근 걸죽한 김치를 만들기도 하고, 혹자는 양념에 고추장이나 토마토 페이스트를 섞기도 하며, 심지어 참기름을 넣고 희한한 김치를 만들기도 한다.
또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어서 식초나 레몬즙을 슬쩍 넣어 신 김치의 맛을 내는 사람도 있고, 책에서 봤다고 풀을 쑤어넣는 사람도 있으며, 재미 삼아 출전해 생전 처음 김치를 만들어본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막 담가서 전혀 익지 않은 김치를 수없이 먹어 보아야하는 비애를 당신은 아는가?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시고, 으~~
때문에 대회가 열리기 전 집에서 미리 밥을 적당히 먹어둠으로써 혀와 위장의 상태를 대비하건만 대회 중간쯤부터 혀가 얼얼해지고 심사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라 하겠다. 함께 심사를 맡은 궁중요리전문가 이명숙씨는 접시에 밥을 담아 갖고 다니면서 함께 맛을 보곤 한다. 맵고 짠 김치와 불고기로 절여진 입맛을 중화시키려는 노력이다.
당연히 심사위원들은 중간중간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다 끝나고 나면 물배가 차는 것은 물론이요, 모두들 손에 너무 많은 도구를 들고 다니느라 육체적인 긴장과 노동도 장난이 아니다. 점수를 적는 차트와 볼펜, 맛보는데 필요한 나무젓가락과 종이접시, 냅킨에 물병까지 수많은 도구를 들고 다니며 음식을 집어먹으려니 두 손이 모자랄 뿐더러 수많은 요리 정보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 보통 정신 사납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서너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못하고 테이블을 수없이 돌면서 점수를 내고 의견조율을 거쳐 입상자를 발표하고 나면 또 한번 겪는 일이 있다. 수상 결과에 불만을 품은 출전자들의 항의가 그것으로, 영어를 좀 하는 심사위원을 붙들어 세워놓고 따지는 것이다.
지난번엔 또라이로 보이는 한 남자가 왜 자기 요리가 상을 타지 못했냐며 화를 내더니, 이번엔 멀쩡한 남자가 쫓아와 “심사위원들이 나의 네가지 퓨전요리를 다 맛보지 않고 점수를 냈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온갖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의 한국요리 경연대회는 정말 뜻깊고 중요하며 재미있는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세번의 대회에 모두 출전했을 만큼 한국요리에 푹 빠진 사람도 있고, 요리사와 식당 셰프 등 전문가들의 참여가 갈수록 늘고 있으며, 매번 김치의 새로운 변신을 지켜보는 일도 흔치 않은 즐거움이다.
건강식품으로 세계가 공인한 김치 만들기 대회가 푸드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