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방귀 한 방에 부러진 손가락

2005-12-0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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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그리피스 공원의 상큼한 공기는 요근래 LA에선 느낄 수 없는 깨끗한 공기이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스모그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지만 밤사이에 나무들이 신나게 뿜어놓은 새로운 산소는 우리 선교회 아이들에게 하루 건강을 버티어 나갈 수 있게 하는 좋은 약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노이로제가 걸린 것처럼 하이킹 하면 치를 떨며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하이킹을 즐기는 아이들이 점차로 늘고 있다. 반수 정도는 그리피스 공원 꼭대기에서부터 뛰어 선교회까지 오기도 한다.
그 날도 아이들은 아침부터 기지개를 펴고, 그리피스 팍 꼭대기까지 후닥닥 뛰어 올라가거나, 아니면 천천히 심호흡을 해가면서 올라가거나,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오르고 있었다. 평소에 예의 바랐던 홍재가 그 날 따라 왠지 심드렁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빠르게 올라갔다가 누구보다도 일찍 내려와선 공원 벤치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그다지 산뜻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어울림도 그 날은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앨라배마에서 온 형제가 다리를 다쳐서 산을 오르지 못하였고, 한 시간이나 심심하게 혼자서 기다렸기 때문인지, 슬슬 홍재 쪽으로 다가와선 농을 걸기 시작하였다. 홍재는 자기를 귀찮게 하지 말라며 피하였다. 그러나 짓궂은 앨라배마는 냉큼 벤치에 앉아있는 홍재 코앞에 와서는 방귀를 붕~~ 하고 뀌고선 그 냄새를 홍재 앞에 털털 털어 그 배추 썩는 냄새를 몽땅 홍재에게 음미하도록 한 것이다.
홍재는 화가 갑자기 치밀어 올랐다. 다른 때 같으면 웃고 넘어갔을 일을 기분이 좋지 않아서인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형이니까 큰소리로 욕은 못하고, 신경질을 내면서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만일 한 번만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러자 앨라배마는 형이라고 자존심이 확 상했다. “너, 형한테… F…, S…”하면서 앨라배마는 홍재의 어깨를 확 밀쳤다. 뒤로 벌렁 넘어진 홍재는 간신히 참고, 또 참고 선교회로 되돌아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홍재는 앨라배마에게 다가가서 “형,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거든. 한판 붙자. 일대일로 정식으로 붙자”라고 말하고는 다른 아이들 눈치를 보며 선교회 뒤뜰로 갔다.
“이얏~” “얍~~” 제대로 싸움도 못하는 녀석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실력은 따라주지 않고… “퍽, 퍽” “윽, 윽” 홍재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일격으로 엉겹결에 앨라배마의 눈퉁이가 순간 밤퉁이가 되었다.
여기에 힘을 얻은 홍재가 다시 한방을 먹이려고 하자, 아이들이 홍재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이를 피하려던 앨라배마는 피한다는 것이 잘못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무거운 몸을 지탱하기에 손가락이 너무나 연약하였나? 새끼손가락이 그만 똑~~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붕대로 감고, 더욱이 앨라배마는 선교회에 오기 전에 그 곳에서 마약 딜러들에게 심하게 맞아서 얼굴이 너덜너덜해졌었다. 그 얼굴을 다른 이물질을 붙여서 꿰매고, 붙이고 하여 겨우 얼굴 형태를 만들어 놓은 지 불과 몇 달…, 다행히도 눈퉁이만 퍼렇게 부어오르고는 이상이 없었다.
씩씩거리던 홍재도 앨라배마의 손가락 부상에 마음이 아파 “형, 괜찮아? 형, 정말 괜찮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연신 미안하다는 말이 계속이었고, 앨라배마도 “괜찮아. 내가 미안하다”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씩~~ 웃었다.
한 집 안에 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으니,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에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사건은 잠시, 금방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며 진정한 가족애를 나누고 있다. 가족이란 가끔 서로를 미워하고, 싸워도 언제나 걱정되는 그런 존재임을 이 곳에서 아이들이 절실히 느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방귀 한방 잘못 꼈다가 큰 코 다친 앨라배마는 적어도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방귀를 아무 데서 함부로 끼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방귀를 hold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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