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대 부부교수가 받은 행복 A 학점

2005-11-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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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법대 제니 강
사우스 웨스턴 김성희

부부는 닮는다 했던가. 그렇다해도 이 부부,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선한 눈매와 조근조근한 말소리, 가끔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유머까지, 혹 남매가 아닐까 착각할 만큼 둘은 하나다. 게다가 둘은 직업도 같다. 좋아하는 것도 같다. 공부가 좋아, 법학이 좋아 쉬지 않고 달려오다보니 법대 교수가 됐단다. UCLA 법대 제리 강(37) 교수와 사우스 웨스턴 법대 김성희(36) 교수. 이민 한세기를 넘어서면서 한인 교수라는 직함이 그리 새로울 것도 없어보이지만 부부 법대 교수라는 이력은 조금은 특별하다. 특히 강 교수는 UCLA 법대 전체 80명 교수에서 동양인 교수 2명중 한명이고 김 교수 역시 사우스 웨스턴 법대 최초의 한인 교수라는 특별한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다 그렇겠지만 이들 부부 역시 연구가 삶이며 놀이인 사람들이다.


아내는 하버드법대 1년 선배
딸 픽업·도시락싸기 남편 몫


말소리·유머감각 ‘닮은 꼴’
연구에 바빠 싸울틈도 없어

강교수는 하버드대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1995년 UCLA 법대 강단에서 시작, 2002~2004년 하버드 법대 객원교수와 조지타운 법대 객원교수 등 대학 졸업후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왔으며 ‘아시안 아메리칸 법학’과 ‘사이버 스페이스 법’,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등 법학에서도 특별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선 첫손가락에 꼽히는 전문가다.
김교수 역시 에모리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3년만에 마친 수재로 고교 때부터 잦은(?) 월반과 조기 졸업으로 나이는 강교수보다 한살 어리지만 남편보다 1년 먼저 하버드 법대에 둥지를 틀었다.
강 교수는 “당시 법대생 중 15%가 동양인이었고 그중 절반 가까운 숫자가 한인일 만큼 한인학생 수가 많았다”며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연합회에서 만나 같이 모임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채근해도 둘의 이렇다할 진한(?) 연애 스토리 한자락 나오질 않았다.
김 교수는 “같은 법대를 다녀도 도서관에 옆에 앉아 공부를 한다든가 함께 공부한 적은 없다”며 “잠깐씩 밖에서 저녁 먹는 정도가 데이트의 전부였다”고 수줍게 웃는다.
여기엔 강 교수의 한번 파고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성격도 한 몫 한 듯 싶다. 스스로 “아내는 삶의 균형을 중요시 여기지만 내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고백하듯 강교수는 지금도 하루 24시간을 잠자는 시간 외엔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문에 말 그대로 ‘용맹정진’했던 남편과 달리 사실 김 교수에게 부부 교수라는 타이틀은 오랜 바람이었다거나 목표는 아니었다.
학창시절 내내 가르치고 연구하는 걸 업으로 삼고 싶었던 강 교수에 비해 김교수는 보다 더 활동적인 분야에서 법학을 접목 시켜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대학원을 마친후 독일로 날아가 특별 연구원 자격으로 연구하다 독일 외교부와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김교수는 워싱턴 DC 대형 로펌에서 근무했고, 결혼 후 LA에 온 뒤에도 다국적 기업인 에너지 드링크 제조사인 레드불(Red Bull)에서 고문으로 법적자문 일을 하기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 남편이 2003~2005년까지 하버드 법대와 조지타운 법대 방문교수로 초빙되면서 2년간 김 교수는 일단 풀타임 일을 포기해야 했다.
김 교수는 “당시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서 그냥 떨어져 살 수도 있었겠지만 가족이란 함께 사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했다”며 “말이 주부지 그때도 연구와 집필로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강 교수의 연구에 치여 김 교수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 집안 풍경을 상상해선 오산이다. 지금까지 결혼 전 성을 유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 부부는 부부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존중한다.
게다가 강교수는 웨스트우드 자택에서 한인타운에 위치한 대학까지 출·퇴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딸 태라(4)를 등·하교시키고, 도시락까지 싸주는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다. 그러다 올해 다시 UCLA로 돌아온 남편과 함께 김교수 역시 사우스 웨스턴 강단에 서게됐다. 부부 법대 교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부부싸움 할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공부 잘하는 이들을 떠올릴 때 흔히 상상하는 ‘범생이’ 이미지를 생각해선 절대로 안 된다.


강교수 말처럼 법대 교수란 어찌보면 ‘말로 먹고사는 직업’인데다 법원에 가서 케이스를 조리있게 논박하고 설득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카리스마는 필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부부다 달변에 위트 넘치는 유머감각까지 가지고 있어 말하고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세상 불공평한게 아닐까 싶을만큼 이 젊은 교수부부는 뛰어난 실력에 예쁘고, 사교성까지 넘쳐나다. 게다가 세상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까지 갖췄으니, 하나님도 가끔은 살아가면서 자극을 받으라고 세상 곳곳에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피조물을 만드시는가 보다.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강교수에게 묻다, 왜 법학을 하는가>
그에게 법학은 참 오래된 소망이며 꿈이다.
1968년 서울에서 나서 3세때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그의 간단한 이력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학창시절 내내 수재에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1세 부모들을 둔 모든 1.5세, 2세들이 그렇듯 그의 유년시절은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강교수는 “다들 그렇듯 부모님들이 차 하나를 사더라도, 가게 하나를 계약하더라도, 관공서와 문제가 생기더라도 영어를 할 줄 몰라 이는 자녀들 차지였다”며 “그러면서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법의 문제점에 대해 꼭 공부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연구업적 역시 상당부분이 아시안 아메리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아시안 학생 비율이 많은 UCLA에서 내 강의가 도움이 되길 바랄 뿐더러 무엇보다 얼마되지 않는 동양인 교수로서도 롤모델이 되고 싶다”며 “그저 공부만 가르치는 교수가 아닌 학생들에게 삶과 학업 모두에 영향력을 주는 스승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부지런한 학구열로 그는 1998년엔 ‘올해의 UCLA 교수상’을 타기도 하는 등 UCLA법대에서도 유명인사다.
그렇다고 그가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화랑도 검은띠를 소유하고 있는 유단자이기도 한 그는 “화랑도는 육체는 물론 강인한 정신을 키우는데도 이만한 운동이 없다”며 “딸아이에게도 얼마전부터 가르치고 있는데 벌써 주황색 띠”라며 슬며시 딸자랑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김교수에게 묻다, 앞으로의 꿈은>
강교수 역시 학문과 생활 모두가 진보적인 소장파 학자이지만 김교수 역시 올곧고 대쪽같은 여성 법조인이다.
사우스 웨스턴 법대 웹사이트에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해 놓은 프로필에 보면 강단에서 그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법정의’다. 그는 학생들에게 케이스를 맡을 때, 법학을 공부할 때 자신에게 두가지를 물어보라고 한다. ‘Is it legal?, Is it right?’(합법적인 것이냐? 그리고 옳은 것이냐?). 그래서 그는 법윤리에 관심이 크다. 현재는 기업법과 계약, 세법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지만 조만간 법 윤리에 대해서 강의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교수는 “로펌에 근무할 때 힘없고 돈없는 소수계들이 불리한 경우를 여러번 봤다”며 “그때마다 무료로 도와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법을 집행할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법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현재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 외에도 개인 연구를 위해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학교 연구실에 나와 연구에 매진한다는 김교수는 하루를 25시간으로 쪼개 써도 모자랄 판이란다.
덕분에 여행 좋아하는 김교수가 최근 가족 여행이라곤 5년전 알래스카 여행일 만큼 앞만 보고 쉴틈 없이 달려 온 셈이다.
그래도 그는 “뜻맞는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면서 살다보니 세상 이야기건 정치 이야기건 죽이 잘 맞는다”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연구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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