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 가지치기를 하다가

2005-1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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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들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누군가를 보살펴야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자연세계에 속해있는 각종 풀들과 나무, 배와 달 등은 각각 자기의 생긴 모양에 따라 서로서로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보고 살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돕기까지 하지요.
존재하는 사물들은 각각 태양과 달의 기운을 가지고 나무는 불을 돕고, 불은 흙을 돕고, 흙은 쇠붙이를 돕고, 쇠는 물을 돕고, 물은 다시 나무를 돕는 이치에서 음양 오행론이라는 것으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생과 사람의 몸까지 보려고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포도나무를 시작으로 대추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등 가지치기에 들어갔습니다. 가지치기는 나무의 모양을 보기 좋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나무가 열매 맺어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포도나무는 줄기 하나에서 양쪽으로 두 가지를 벌리고 일곱 마디 정도 남기면 됩니다. 대추나무는 옆으로 너무 나왔거나 아래로 쳐진 가지를 잘라주고 위로 너무 올라간 가지들도 잘라냅니다.
살구나무와 자두나무 등은 옆으로 가지를 4-6개정도 벌리고 그 가운데를 비어있게 해야 바람이 잘 다닐 수 있어 열매가 썩지 않고 잘 자라게 되죠. 나무마다 열매모양이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관리도 나무마다 가급적이면 섬세하게 해주어야합니다.
가지치기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비우게 하는 데에 참 뜻이 있습니다. 비워서 바람이 잘 통하게 해야 나무에 벌레가 적고 열매가 적당히 잘 달리게 되지요.
나무를 잘 보면 너무 지나치게 웃자라는 가지가 있는가 하면 쓸데없이 옆으로 뻗어나간 가지도 있고 가지가 너무 땅바닥에까지 처져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지들은 대개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입니다. 열매가 열렸다 해도 따서 수확하기 부끄러운 쭉정이와 같은 열매입니다.
나무 속을 비우게 해서 바람도 잘 통하게 하려고 안으로 뻗은 가지도 잘라내야 하지만 쓸데없는 데에 자기를 내미는 가지 역시 잘라줘야 그쪽으로 가는 영양분이 좋은 가지와 열매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뿌리가 땅 속에 있어야 하는데 속에 있기가 갑갑하다고 자꾸 쓸데없이 외출하길 좋아하는 사람들 마냥 뿌리가 나와 거기에서 또 다른 나무로 자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다가,
접붙인 아래 뿌리 쪽에서 올라오는 곁순도 잘라 버렸지요. 뿌리의 기운을 줄기와 가지가 감당하지 못하면 때로는 곁순이 접붙인 위쪽을 죽이기도 하지요.
가지치기를 하다가,
기형적으로 자라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곁순처럼 드러나지 말아야 할 자아가 드러나 좋은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가지치기를 하다가,
쓸모 있는 가지와 쓸모없이 웃자란 가지들과 곁순들을 보고 쓸모없는 가지와 곁순은 모두 잘라 버렸지요.
가지치기를 하다가,
내게서 자라나는 많은 가지들을 보고 쓸모 있는 가지들을 보듬어 안고 쓸모없는 가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됩니다. 보이는 것은 버리기도 쉬운데 보이지 않는 것은 없애기도 쉽지 않지요
살구나무의 가지를 자르며,
열매 맺지 못하는 내 안의 가지들, 자기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교만과 열매 없는 자기를 가리려는 위선들, 미움과 원망 시기와 질투 등 각종 허영과 욕망의 찌꺼기들을 보았고 그것들이 내 주인 행세하는 대목에서는 그저 참담할 뿐입니다.
살구나무의 가지를 자르며,
잘 자라야 되는 가지들과 열매들이 쓸데없는 곁순과 가지들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세상은 쓸데없는 가지가 번성해야 환영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정작 자라야할 착함, 온유함, 평화, 사랑 등의 가지는 자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를 늘 깨어서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내년이면 또 잘라내야 하는 가지들이 있기 때문이고 늘 좋은 나무로 존재하기 위함입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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