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 빵이 웬수지

2005-11-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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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음식이 참 풍족하고 가격도 싼 편이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특히 무지하게 먹어치우는 우리 선교회는 말이다.
한창 나이의 청소년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인지, 이들은 먹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어떻게 하든 잘먹고,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는 온갖 좋은 것은 다 먹고, 언제든지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가 있었는데 선교회는 아침, 점심, 저녁시간 맞추어 먹어야하고, 중간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간식먹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니 그럴 수밖에… 한날만 제외하고 말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소라 고모님이 우리 모두가 먹고 남을 만큼의 간식을 가지고 오신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고, 오늘은 무엇을 사오실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어떤 때는 고구마, 옥수수, 수박, 과자, 등등 그때그때 종류가 다양하게 바뀌곤 하는데, 나는 옥수수를 제일로 기다린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과점 빵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문제의 토요일은 고모님이 빵을 숫자를 맞춰 커다란 박스로 사오신 바로 그 날이었다. 곰보빵, 크림빵, 팥빵, 소세지빵 등등 종류의 빵 중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빵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데 아이들이 이것을 보자 곰보빵도 먹고 싶고, 소세지 빵도 먹고 싶어 아마도 몰래 두 개씩 가져간 아이들이 있었나보다. 그만 빵을 못 가져간 아이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미 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못 가져간 아이들은 분노에 치를 떨고, 가슴을 치며 분통해했다. 그러나 이미 누군가의 입속에 들어간 빵을 다시 꺼낼 수도 없으니, 앞으로는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비교적 그래도 한솥밥을 먹고, 살아서 그런지 사이들이 좋고 서로서로 아끼며, 나누는 일에 익숙해져있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욕심도 부리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어쩔 수 있겠는가? 그 정도만 하는 것도 정말 기특한 일이지…
그런데 아래층에서 “우당탕 퉁탕, 퍽” 소리가 나더니 큰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선교회 막내 녀석 일명 코딱지 녀석이 성질 까다로운 누나인 희영이 빵을 슬쩍 훔쳐먹은 것이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결과를 뻔히 알면서 그 빵을 몰래 먹었을까!
희영이는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코딱지를 밀어 부치며 자신이 먹지 않고 아껴둔 그 빵을 홀랑 먹어버린 코딱지를 때렸다. 울면서 때렸다. 너무나 먹고 싶었던 빵, 그 빵을 너무너무 맛있을 것 같아 몰래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음미하면서 먹으려 했는데… 그 귀하디 귀한 빵을 맞아가면서도 코딱지는 입 속에 마구 구겨 넣으면서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맞고 얻어터지면서도 그 빵을 꼭 잡고 끝까지 먹은 코딱지… 웃어야하나, 울어야 하나. 이 장면을 만일 부모가 보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눈물 젖은 빵 맛을 본 코딱지는 앞으로 인생의 맛이 어떤 것인지를 빨리 깨달을 수 있을까?
선교회에 오기 전까지 몇몇 아이들은 집에서 도무지 밥을 먹지 않아서 부모들이 일일이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교회에서는 제시간에 밥을 먹지 않으면 끝이다. 다음 식사시간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자기가 밥을 먹지 않아도 그다지 신경 쓰는 이가 없다. 그래서일까? 정말이지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다. 없어서 못 먹는다. 그저 내어 놓기가 무섭게 맛이 있든, 없든 너무나 잘 먹어 치운다.
물론 때때로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이니 햄버거, 피자, 치킨이 먹고는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역시 뿌리는 못 속인다고, 몇 끼만 미국식으로 해주면 김치찌개 해놓으라고 난리들을 쳐댄다. 김치찌개를 끊이는 날은 밥솥에 밥을 한 가득 해도 언제나 모자란다. 김치, 고추장은 한국인의 힘이다.
이렇게 아주 가끔은 빵 때문에 서로서로 죽일듯 싸워도 어쩔 수 없는 한국 토종의 아이들이기에 나는 빵 때문에 싸우는 아이들에게 정이 간다. 왜? 나도 한국 토종이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그래서 코딱지와 희영이는 다음날 다시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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