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문 여는 연습

2005-11-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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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김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지난 40여년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서 실망과 서운함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더 큰 실망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 문을 여간해서는 열지 않는다.
엄마는 건강상의 이유로 늘 보호받는 생활을 해왔었다.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던 고통들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공간이 엄마에게는 없어 보였다. 십대의 고통스러웠던 어느 날, 엄마에게 마음을 내밀어 대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핀잔만 받았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는 말문도 열지 못했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자꾸 반복되면서 김씨는 학업성적등 엄마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동생을 보고 질투심이 일기는 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 여기곤 했다. 어느 날 엄마가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통 모르겠다. 사는 이야기를 도무지 해주지 않으니 말야” 하셨다. “갑자기 이제 와서 무슨 이야기?”라며 김씨의 내부에서는 오히려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남편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지고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어릴적 엄마에게서 배척받고 무시 받았던 느낌을 재경험했다. 대화로 부부관계를 해결하기보다는 입을 더 굳게 다물고 마음의 벽을 더 튼튼하게 쌓아 올라갔다. 이혼과정에서 남편이 “당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혼 후 마음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를 인터넷에서 만났다. 서로가 호감이 강했기에 바로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몇개월 후 육체적인 관계가 뜸해지면서 남자친구가 일을 내세워 바빠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전 남편이 자신과 함께 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던 것처럼 이 친구도 바쁜 사람이 되어갔다. 몇 차례의 대화시도 후, 김씨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마음의 벽을 더 튼튼하게 쌓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인터넷에서 다른 여자들과 사귀는 것을 발견했다.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따지고 들었다. “네가 대화를 많이 하지 않으니까 내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잖아?”라는 변명만을 듣고 말았다.
김씨의 마음은 또 누구에게서 어떻게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배척당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상담과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도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 외에는 타인과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오래되고 여전히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마음 문 여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있다. 무척이나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상담 과정중 이해 받고 존중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40대에 해결해야할 자신의 숙제임을 인식하고있다. 50이 되기 전에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 문을 여는 것이 김씨의 목표이다.


이 은 희 <결혼가족상담전문인> (leelmft@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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