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11-02 (수)
크게 작게
정숙희 기자에 대한 몇가지 진실

3년 동안 매주, 거의 빼놓지 않고 주방일기를 써온 탓에 독자들의 다양한 관심과 반응에 부딪치곤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한 호기심이 주를 이루지만, 간혹 나를 섭섭하게 만드는 멘트도 있어 은근히 상처받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화를 걸어온 독자들의 반응. “어머, 목소리가 고우시네요”하며 놀라는 것이다. “왜, 제 목소리가 고우면 안되나요?” 하고 물으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목소리가 크고 괄괄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독자들을 직접 만났을 때는 좀더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열명이면 10명 모두 “그 집 사정 빤히 다 알아요. 숫가락 숫자도 세고 있는걸요”
열명중 9명은 “어머, 자그마하시네요. 키 크고 덩치 좋은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열명중 8명 “사진하고 너무 달라요. 실물이 나으니 사진 새로 찍어 올리세요”
열명중 5명 “생각보다 말이 없고 얌전하세요”
전부터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런 일이 없는데, 오직 주방일기를 통해서만 나를 알게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심각한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다. 글이 다소 과격하고 주책스럽다보니 정숙희 기자란 인물이 ‘대담하고 씩씩하며 한 터프하는 아줌마’라는 이미지가 구축된 것 같다. 그러므로 3주년을 맞아 우선 위에 열거된 순서로 오해를 불식시키는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내 목소리는 왕년에 성우 하란 소리도 들었을 정도로 괜찮은 편이다. 연극 주인공도 했는데…
우리 집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독자분들. 물론 너무 솔직하게 써서 집안살림을 많은 부분 드러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우리 집이 주방일기에 그려진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기사는 행간을 읽어야하는 법.
키와 덩치에 관하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의 산 모델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학교 때 번호가 늘 10번 이하에서 맴돌아 별명이 주로 ‘꼬마’였고, 옷 사이즈는 2나 4를 사도 언제나 소매길이와 치마 단, 바지 단을 줄이느라 세탁소에 엄청 돈을 갖다주는 체형인데, 직장생활 내내 하이힐을 신고 다녀서 내가 꼬마인 줄 모르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
사진과 실물이 다르다는 사람은 정말로 많다. 기분 좋은 것은 그들 모두가 “실물이 훨씬 젊어 보이니 사진을 다시 찍어 바꾸라”는 것인데, 그 말을 3년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듣고 있음에도 못 바꾸는 이유. 분명 실물이 낫다고들 하건만 실제로 다시 찍어서 보면 웬걸, 못 생긴 아줌마가 떡 하니 웃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사진이라 이 문제를 지금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보다 얌전하다’는 멘트는 사람을 가리는 나의 성격을 지적한 것이니 과히 틀린 의견은 아니다. 나는 친하거나 잘 아는 사람과는 한없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잘 모르거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주로 묻는 말에 대답만 하는 편이다. 물론 취재나 인터뷰할 때는 그렇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만났을 경우 그렇단 얘기다.
이 외에 여자들을 만나면 언제나 듣는 불평이 또 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식구들 밥을 잘 챙겨 먹이냐”는 것이다. 밥해먹고 사는 이야기를 너무 열심히 썼는지, 아니면 실제보다 과장하고 잘난체를 했는지, 어느덧 많은 주부들 사이에 정숙희 기자가 ‘공공의 적’이 돼버린 모양이다. “주방일기 보면 기가 질린다”거나 “남편이 그걸 보고 넌 왜 이렇게 못하냐고 핀잔을 준다”는 주부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사과와 해명의 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얼마전 FM서울 라디오 ‘김미회의 세시의 데이트’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김미회씨도 나에게 똑같은 말을 물었는데 다음은 그때 내가 청취자들에게 생방송으로 드렸던 말씀이다.
“무엇이든 남이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일보다 대단해 보입니다. 또 별거 아닌 일도 글로 써놓고 보면 근사하게 느껴지지요. 저도 똑같습니다. 다른 주부들도 다 하는 일을 그저 미주알고주알 글로 쓰다보니 뭘 유난히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에요. 여러분도 매일 저녁 해먹는 음식, 마켓에서 장본 것, 남편과 아이들 일로 바삐 뛰어다닌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세요. 나중에 보면 우와~ 내가 이렇게 일을 많이 했어? 하고 놀랄겁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