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와우이식 수술하던 날 (1)

2005-10-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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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날엔 교회에 갔다.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고 승욱이와 난 영적으로 무장을 하였다. 교회에선 중보기도 팀이 함께 기도를 해 주었고, 나의 얼굴도 승욱이의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분들이 그저 우리의 사정만 아시고 중보를 계속하고 있었다.
수술날 아침, LA로 친정어머니와 나, 그리고 승욱이가 차를 타고 간다. 병원에서 만나기로 한 캐롤씨는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수술 시작하는 시간이 11시30분으로 잡혀 있다. 병원엔 9시까지 오라고 했다. 시간 맞춰 서둘러 병원에 들어서니 성격 좋은 캐롤씨가 우리에게 걸어온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기도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앞서 등록하는 곳에서 승욱이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승욱이가 잔다. 밤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먹을 것 달라고 울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차를 타고 오면서 잠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리니 수술 대기실로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수술 대기실로 들어서니 특유의 소독약 냄새 때문인지 승욱이가 벌떡 깬다. 나에게 딱 달라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내 목을 조이고 있다. “괜찮아 승욱아,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그래도 잘 참네. 무지 배고플텐데…”
승욱이는 자신을 어찌하는 건지 아는지 또다시 특유의 달라붙음으로 나에게 안겨 있다. 친정엄마가 안아주려 해도 꼼짝도 안 한다. 승욱이를 안아주고 업어주고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고… 예정된 수술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의사 ‘이시야마’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점점 승욱이가 더 칭얼댄다. 난 급한 마음에 간호사에게 언제쯤 수술실로 들어가냐고 다그쳤다. 그제야 아직까지 승욱이 기록이 수술실로 내려오질 않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뭐? 아직까지 차트가 안 내려 왔다구? 뭐야, 이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할 무렵 의사가 왔다. 알고 보니 승욱이가 5년 전에 눈 수술할 때 만들어 놓은 병원카드와 귀 수술하면서 만든 병원카드의 번호가 맞지 않아서 차트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눈 수술하면서 만든 번호가 아직까지 병원기록에 남아 있었나보다. 똑같은 이름이 두개나 있으니 행정 보는 사람들도 많이 혼동스러웠나 보다.
나의 통역사 캐롤씨가 잘 설명한 후에 모든 차트를 빨리 찾았고 수술에 앞서 의사 선생님의 브리핑이 바로 들어갔다. 승욱이의 수술을 담당하는 실제 의사는 ‘이시야마’ 선생님이다. 그 외에 마취과 선생님이 두 명, 그리고 수석 간호사, 소아과 선생님이 함께 브리핑에 참석했다.
수술을 위한 브리핑이 끝난 후, 의사는 질문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난 ‘이시야마’ 선생님에게 승욱이가 과연 잘 듣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쪽만 수술하는 것으로 소리를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고 물었다. ‘이시야마’ 선생님은 명쾌하게 “물론이지, 승욱인 분명히 들을 거고,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한쪽만 수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질문은?이라고 ‘이시야마’가 물었다. 그때 친정엄마가 이시야마에게 “당신이 승욱이 인생일대에 얼마나 중요한 의사인지, 또 지금 얼마나 큰일을 승욱이에게 해 주는지 그걸 기억해 달라”고 하셨다. 우리 가족이 평생 ‘이시야마’ 선생님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수술하는 그 순간에 ‘이시야마’ 선생님의 손을 축복해 주실 거라 말씀하셨다.
‘이시야마’ 선생님은 감사하다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하고 수술실로 먼저 갔다.
수술실은 모든 준비가 끝이 났나 보다. 승욱이를 데리러 간호사가 왔다. 승욱이는 버둥버둥 절대 나에게 떨어지질 않는다. 간호사도 괜히 승욱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며 엄마가 함께 수술실까지 가기를 권했다. 난 무균복으로 갈아입고 승욱이를 다시 안았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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