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뚝박기

2005-10-23 (일)
크게 작게
“악, 악, 으윽…”
선교회가 떠내려가라고 질러대는 소리가 하루 일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들이 밥만 먹었다하면 선교회 좁디좁은 그 뒷마당에 쭈르르 모여든다. 옛날 우리 어릴 적 느티나무 밑에서 어둑어둑해져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와 찾을 때까지 정신없이 놀던 그 말뚝박기가 오늘날 나눔에서 유행하기 때문이다.
“가위, 바위, 보” 한국말도 잘 못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가위 바위 보는 알아 가지고… 녀석들 그리도 신이 나는지,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양편에 캡장이 눈싸움서부터 기싸움에 이르기까지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을 듯한 자세로 기선을 제압한다.
결국 진 편은 담벼락에 대장질하는 녀석이 중심을 잡고 선다. 그리고 그 녀석 허리를 단단히 붙들어 잡고 머리를 배 위에 딱하고 들이대고는 “얍!” 하고 기합을 단단히 넣는다. 그 뒤로 줄줄이 앞에 있는 녀석들 똥꼬에 머리를 들이박고는 행여나 무너질까 허리춤을 꼭 잡고서 기를 쓰고 붙어있다.
“OK” 준비됐다는 사인이 떨어지면 다른 편 대빵이 “이얏!” 하는 기합을 넣으며 지들이 무슨 마루치, 아라치라고, 정의의 불사조가 되어 나쁜 놈들을 물리치려는 비장한 눈빛과 함께 줄줄이 엎드려져 있는 녀석들 등이고, 허리에 체중을 실어 사정없이 올라탄다.
그러면 밑에 깔려있는 녀석들은 “으악, 웩, 뜨악”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도 어떻게 하든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체중이 확실히 나가는 형제가 투철한 사명을 갖고 엉덩이에 더욱 더 무겁게 힘을 빡빡 주면서 선교회 문 저 끝에서부터 달려간다. 그러다 턱하고 제일 끝에 있는 녀석의 허리부분에 몸을 걸치면 십중팔구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이렇게 신나게 노는 녀석들을 지켜보면서 난 참 묘한, 그리고 아득히 그리운 옛 추억에 잠긴다. 내가 저 녀석들보다 쬐끔 더 어렸던 중학교 1학년 때 그 대단한 동도중학교를 퇴학 맞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할아버지 눈치에 못 이겨 개인적 사업을 구상할 수밖에 없던 그때, 결국 안국동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부패라는 소위 요즈음 말로하자면 불량서클 갱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낙원 아케이드에 있는 분식집에서 신나게, 떡볶이야, 라면이야 시켜먹고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 순서대로 유유히 그 분식집을 빠져 나온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 남은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음식값을 치르던, 눈치를 보고 잽싸게 튀던, 신나게 맞아서 때우던, 그것은 가위, 바위, 보를 마지막까지 진 사람의 몫이었다.
이렇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는 삼천공원이야, 근처 종로2가, 정릉 등을 배회하며, 가끔은 아이들 회수권도 빼앗고, 괜히 학교 다니던 녀석들 모자도 빼앗아 심통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겁날게 없었고, 모든 것이 다 내 세상 같기만 했던 그 시절…
어릴 때부터도 기타를 잘 치고, 싸움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기가 그야말로 울트라 캡숑 짱이었던 나는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끔찍한 아이이기도 했다. 여러 아이들을 쫙 하니 거느리고 다니면서 대장질을 하는 것이 마치 대단한 독립운동을 하는 듯 엄청나게 자랑스러웠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로 딱 한번만이라도 되돌아갔으면 싶다. 아무리 그때 내게 당했던 이들이 이를 뿌득뿌득 가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그 아득한 어린 시절 추억들! 이 녀석들의 말뚝박기를 보면 되살아나곤 한다. 아~~ 그립다, 나의 소중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너무나 보고 싶은 불알 친구들…
지금은 나눔에서 생활하는 너희들이 무슨 수를 쓰던 나눔을 하루 빨리 나가고 싶겠지만, 인생의 가장 순수한 그 시간을 함께 먹고, 자고, 나누던 친구들이 언젠가는 나처럼 그립고, 그리워 뼈에 사무치게 보고 싶은 그날이 올 때 아마 오늘 너희들의 말뚝박기가 더없이 그리워질 것이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있을 때 잘하라구.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