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명인들 내 손맛 단골입니다

2005-10-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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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 내 손맛 단골입니다

▲ 유명인사들의 커리커처가 그려진 벽 앞에 선 ‘셰프 K’ 이경호씨. 다운타운 팜에도 한인 고객들이 많이 찾아주길 바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맞선을 본 남자가 할리웃의 명물이라며 데려간 고급 식당이 있었다. 베벌리힐스 ‘팜 레스토랑’(Palm Restaurant). 별 볼일 없던 그 남자는 곧 잊었지만 랍스터와 스테이크가 환상적으로 맛있던 그 식당의 이름은 머리 속에 저장해 두었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나와 함께 팜 레스토랑을 다시 찾은 또 다른 남자가 있었으니 지금의 남편이다. 첫 데이트를 했던 특별한 추억의 식당, 훗날 그 식당의 주방장이 한국인임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반가움과 감격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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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다운타운의 메인 다이닝룸. 1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팜 다운타운 레스토랑과 셰프 K 이경호씨


80년 역사 최고급 레스토랑 셰프로14년 총지휘
베벌리힐스 팜 그의 요리솜씨에 매출 두 배로 껑충뛰자
LA다운타운점으로 전격 파송 ‘새 명소’ 시장 개척나서

미국인들 사이에 ‘셰프 K’로 불리는 이경호(48)씨.
할리웃 스타들과 유명인사들이 내 집처럼 드나드는 베벌리 힐스 팜의 운영과 관리를 14년 동안 총지휘해 온 그가 두달전 LA 다운타운 팜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미전국에 29개가 성업중인 팜 레스토랑은 80년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최고급 식당. 랍스터 등 신선한 해산물요리와 프라임 비프스테이크가 트레이드마크인 이곳은 특히 식당에 들어서면 벽면 가득히 단골인 스타들의 얼굴 커리커처가 그려져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설레브리티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할리웃서 뜨려면 자주 드나들어야하는 명소로도 널리 알려진 식당이다.
셰프 K는 베벌리힐스 팜에서 고객들뿐 아니라 종업원들에게 최고 인기를 모았던 ‘스타 셰프’. 요리 실력이 출중한 것은 주방장의 기본이니까 거론할 것이 못 되고, 언제나 웃는 얼굴에, 언제나 기분좋은 서비스, 언제나 ‘예스’인 그는 무엇보다 ‘손님을 위한 셰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손님이 좋아서요. 자주 플로어에 나가 손님과 대화하면서 이 분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인지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주지요. 우리 식당은 단골이 80% 이상인데다, 일주일에 너댓번 오는 사람들도 있으니 베벌리힐스 팜의 손님들은 다 친구 같았어요. 식당에 들어와 앉자마자 그냥 “I’m hungry” 한마디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메뉴에 없어도 그분 입에 맞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드립니다. 사람들은 그런 퍼스널 서비스를 좋아하지요.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손님과의 관계입니다”
그가 베벌리힐스 팜의 매출을 두 배로 올려놓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그가 다운타운 팜으로 ‘스카웃’ 된 이유도 바로 그것.
한꺼번에 400명 이상 서브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을 LA의 새로운 명소로 만드는 것, 이 식당의 매출 역시 현재의 두배 즉 1,500만달러로 올리는 목표로 ‘파송’된 것이다.


“가족적인 분위기
우리 식당의 특징”

손님·웨이터·셰프가 모두 친구
제철 재료로 새 메뉴 개발 전력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이경호씨는 기자를 데리고 다운타운 팜(The Palm Downtown LA)의 넓은 식당 내부를 1층, 2층 다니면서 투어시켜 주었다.
입구의 바에서부터 메인 홀, 5개의 다이닝룸을 지나 아래층, 위층 주방은 물론이고 자신과 직원들의 사무실, 와인 셀러까지 구석구석 다 보여주는 주방장, 이처럼 소탈하고 개방적인 그에게는 모두가 친구이고 가족이라,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웃으며 인사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특별히 설거지 파트에 오자 셰프 K는 히스패닉 직원들을 일일이 이름 불러 소개시키며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가 우리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다른데서 아무리 잘해도 이 곳이 움직이지 않으면 식당이 올스탑되지요.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 갑자기 ‘셰프 K’를 넘어 ‘인간 이경호’에게 호감이 확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런 주방장과 일을 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다운타운 팜은 3년전인 2002년 4월에 오픈했는데, 바로 가까이 스테이플 센터와 컨벤션센터가 있고 다운타운 주거환경 재개발 붐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경영상의 문제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셰프 K가 입성한 후 벌써 달라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종업원들이 행복해진 것, 그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좋은 음식과 좋은 서비스가 나오는 것임을 셰프 K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원래 팜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손님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직원들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지요. 손님과 웨이터, 셰프의 구별이 없어요. 팜 전통의 편안한 분위기를 회복하기 위해 직원들 재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신경 쓰는 부분은 당연히 음식과 서비스. 이것도 셰프 K의 전공이므로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팜의 철학은 고객이 가장 좋은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가족 같은 서비스를 받으며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팬시한 것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지요. 음식도 손님이 오더하면 그때부터 만듭니다. 미리 해놓는 건 절대 없지요. 음식이 최상급 수준임에 비하면 가격은 싼 편입니다. 단골들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재료 구입, 종업원 채용과 훈련, 식당 경영 전반을 다 책임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그의 업무는 메뉴 개발이다. 제철 재료가 나올 때마다 새롭게 구상하고 소스를 개발하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데 ‘운이 좋아서’ 지금껏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음식할 때 내 레서피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만들지 않고 손님이 이걸 먹을 때 무슨 맛을 찾을까, 이 사람의 스타일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요리합니다. 내가 요리사니까 내가 만든 거 먹어라가 아니라 손님이 원하는 걸 맞춰서 만들자는 자세는 분명이 다르죠”
자세도 다르고 실력도 있지만 그가 가장 미국적인 식당에서 가장 인정받는 셰프로 올라선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
“공부 열심히 했어요. CIA학교에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기반을 다졌고 지금도 계속 공부합니다. 책, 잡지를 늘 보면서 메뉴를 개발하지요. 가만히 서있는 것은 뒤로 가는 것이니까요”
셰프 K 이경호, 요리 실력도 최고이지만 그가 요리를 잘해서 인정받는 셰프인 것보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셰프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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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다이닝룸. 20~40명이 파티할 수 있는 방이 5개 있다. 하나로 오픈하면 120명의 대형 파티도 가능하다.


팜 레스토랑


올해말 오픈 SD점 포함 미 전국 25개도시 총 30개 식당
랍스터등 신선한 해산물외 스테이크 입에서 살살 녹아

올해말 오픈하는 샌디에고 점을 포함 뉴욕, 워싱턴 DC, 마이애미, 시카고, 달라스 등 미국의 25개 대도시에 총 30개의 식당이 있는 팜은 어디나 같은 음식, 같은 서비스,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최고급 식당이지만 번쩍번쩍한 인테리어에 치중하지 않고 편안한 클래식 미국스타일로 꾸며져 있어 들어가면 우선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팜의 음식은 모두 입에서 녹을 만큼 맛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랍스터 요리(Jumbo Nova Scotia Lobster). 보통 식당에서 먹는 랍스터는 메인주에서 잡히는 랍스터인 반면 팜의 랍스터는 메인주 위의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에서 잡히는 것이라 그 질과 맛이 차원을 달리 한다. 셰프 K의 설명에 따르면 해변에서 잡는 메인 랍스터는 온갖 오물을 먹고 자라지만 노바 스코티아 랍스터는 깊은 해저에서 새우와 조개 등을 잡아먹고 살며 바닷물의 압력 때문에 껍데기가 단단하고 속살은 더 부드럽다고 한다.
이 랍스터를 산채로 쪄서 녹인 버터소스에 찍어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한 마리가 3파운드 이상인데 현재 가격은 파운드당 22달러. 그외 메뉴 가격은 샐러드가 7~13달러, 야채와 감자 사이드 디시 6.50~9.50달러, 각종 해산물 애피타이저 5.50~18달러, 스테이크 33.50~38달러 등이다. 런치는 18~25달러 선.
팜에서는 파티가 많이 열리는 편인데 특히 다운타운 팜에는 오디오 비디오 시설을 갖추고 20~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이닝룸이 5개나 있어 연일 각종 모임이 열리고 있다. 파티 음식은 메뉴와 관계없이 맞춤형으로 해주기도 한다. 스테이플 센터에서 게임이 있는 날은 가능한 피할 것. 오후 5시30분부터 2시간동안은 한꺼번에 500~600명이 몰리기 때문이다.
다운타운 팜은 1100 S. Flower St. LA(11가와 Flower 코너), 베벌리 힐스 팜은 9001 Santa Monica Blvd. LA (310) 278-6366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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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 미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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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 랍스터.


■ 이경호씨는

식당경영 부친 영향
요리사 외길…태생적 주방장
경희호텔경영전문 1회 졸업
부부 식당 여는 게 꿈

여섯 살 때 이미 ‘내 식당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태생적 주방장. 북창동에서 ‘한국회관’을 경영하던 부친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요리사란 직업이 그다지 화려한 커리어인 것도 아니었건만 오로지 한 길만 바라보았던 그는 그때 처음 개교한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에 입학, 조리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스물셋이던 80년 미국으로 유학, 가장 유명한 요리학교인 뉴욕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했고 FIU(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식당경영학으로 학사, 석사과정을 밟았다.
매스터과정 수료를 두학기 남겨둔 어느 날, 보스턴의 유명식당 ‘리걸 시푸드’(Legal Seafood)의 사장이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 스카웃한다.
‘영주권을 내주겠다’는 조건에 그는 학교를 나와 보스턴으로 갔다. ‘석사과정은 나중에 돌아와서 마치자’고 다짐했지만 갈수록 커리어가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바람에 그 결심은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다.
86년부터 7년간 리걸 시푸드에서 식당 경영의 기초를 닦은 그는 92년 베벌리힐스 팜 레스토랑의 총주방장(Executive Chef)으로 다시 스카웃 된다.
그곳서 14년, 그리고 이제 새로운 팜 다운타운에서 다시 한번 셰프 K의 웅지를 펼쳐볼 계획이다.
이경호씨의 소박한 꿈 하나,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 1회 졸업 동기인 아내 이윤채씨와 함께 부부의 맛과 사랑이 담긴 식당을 하나 여는 것, 별로 어렵거나 먼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글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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