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10-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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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지난 일요일, 그쪽으로 지나는 길이 있어 웨스턴과 1가에 새로 문을 연 ‘파리 바게트’를 찾아가 보았다. 이 빵집이 오픈 하기를 학수고대해 온 후배 여기자로부터 하도 여러번 이야기를 들었던 차라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렇게 호들갑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파킹하면서 보니 유리창 너머로 계산대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요일인데 웬일이야, 정말 사람이 많긴 많네’ 생각하며 빵집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모든 선반과 빵 바구니들이 깨끗하게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줄을 선 사람들은 그나마 간신히 식빵 한 줄이라도 건진 사람들이었다. 우리 다음으로도 계속 밀려드는 사람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텅 빈 가게를 둘러보며 “멀리서 일부러 왔는데 왜 빵이 없냐”고 불평해댔고, 바빠서 절절 매는 직원들은 “밤새 구웠는데 이러네요. 죄송합니다”라며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터라 놀랍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빵이래야 장보러 마켓 갈 때 옆에 있는 빵집에 들러 몇개 사다먹을 뿐, 일부러 빵집을 찾아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맛있는 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이 신기할 뿐이었다.
‘파리 바게트’가 오픈 하는 것을 “경사났다”고 열광했던 후배는 한국서 살 때 엄마와 함께 맛있는 빵을 사러 일부러 멀리 있는 빵집도 찾아가고, 빵 굽는 시간표를 보면서 막 구운 빵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너무나 행복하고, 맛있는 빵을 보면 가슴이 뛴다”는 그녀는 한국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전형이다.
먹거리 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에서 자란 세대들은 이곳 한인타운의 ‘후진’ 빵 문화가 ‘충격’이라고들 말한다. 현재 우리가 사다먹는 곰보빵, 단팥빵, 크림빵들이 촌스럽고 맛없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한국의 빵집을 못내 그리워하는 것이다.
‘삼순이’ 드라마에서도 나오듯 21세기 한국은 빵과 케익, 디저트 문화가 너무 고급화되어 모양이며 맛이 모두 환상이라고 한다. ‘뚜레쥬르’‘크라운베이커리’‘파리바게트’ 같은 빵집들이 골목마다 코너마다 자리잡고 있어 빵이 중요한 먹거리로 생활화되어있으며, 간식은 물론 아침식사로 다들 빵을 먹기 때문에 빵 굽는 시간에 맞춰 빵집에 가는 빵순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에 다녀온 동료 한 사람도 너무나 예쁘고 맛있는 빵집에 깊이 감명을 받고 돌아와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그 빵집 이야기를 하였다.
이민 온지 20년이 넘은 우리 중년세대는 삼립 크림빵을 먹고 자란 세대, 밥 먹기도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빵은 호사스런 간식이었고 빵집이래야 고려당과 태극당이 전부였다.
학교 급식으로 나오던 옥수수 빵도 청소한 날에나 먹어볼 수 있었던 국민학교 시절, 토요일 저녁이면 엄마가 종로 2가 고려당에서 식빵 두줄을 사오셨던 것이 특별한 간식이었다.
그때 집에 미제 토스터가 하나 있었는데 수많은 형제들이 토스터와 식빵 봉지를 둘러싸고 앉아 두 개씩 튀어나오는 빵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며 순서대로 마가린 발라먹던 일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샤니 빵을 먹으며 고교시절을 보냈고, 대학 졸업 무렵에야 ‘호텔신라’에서 식빵을 사다먹던 기억이 난다. 또한 그 즈음 새로 생긴 ‘김충복 제과점’이 그때까지 알던 빵과는 한 차원 다른 빵 문화를 선보여 놀랐던 것이 한국 빵에 대한 마지막 추억. 미국 와서는 수퍼마켓에서 파는 미국 빵이 하도 맛없어 만나제과 빵만도 감지덕지하며 지금껏 살았던 것이다.
젊은 그들은 왜 빵에 열광하는 것일까? 빵순이 후배는 “빵만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이 있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빵을 먹으며 자랐기 때문에 추억의 음식, 즉 컴포트 푸드가 빵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후배는 “한국 빵은 미국의 케익이나 디저트처럼 너무 달지 않고 우리만의 맛이 있기 때문에 계속 먹게 된다”고 설명한다.
혹시 그렇게 먹어도 살찌지 않는 나이라는게 더 중요한 이유 아닐까?
그나저나 ‘파리 바게트’ 빵은 아직 맛도 보지 못했다. 빵순이 역시 세 번이나 갔는데 갈 때마다 하나도 없어서 사지 못했다며 울상이니, 과연 그 집에서 빵을 만들고 있기는 하는지, 고도의 세일즈 전략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순이는 또다시 올림픽 가에 짓고 있다는 케익 전문점 ‘윈’이 오픈 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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