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들아! 용서해다오

2005-10-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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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연 내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큰 아이가 어릴 적, 나는 마약으로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저 하루하루 사는 것조차도 벅찼었다. 그 후 간신히 하나님의 은혜로 뒤바뀐 삶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지만, 역시 아이들과 나는 다른 공간과 시간을 살고 있었다.
사역 때문에, 선교회 일 때문에… 이유라고 붙여놓은 핑계들로 나는 이미 가족과의 관계를 떠나있었고, 지금껏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일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부족한 아버지였다. 단지, 아이들의 인생에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단 한 가지만을 제외하고는 난 이미 아버지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면서도 나는 할 수 없었던 이중적인 모습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짐작하건대, 아마도 나의 아이들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불만과 상처가 가득히 쌓여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불안감으로 더더욱 아이들과 잠시의 시간이라도 갖는다는 것이 내게는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우선한다는 것이 아이들이 보기에 위선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막내가 13살이 되면서 제법 의젓한 티를 내기 시작하는 지금에서야 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나도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증거인가? 그러나 비록 아이들의 인생에 끼여들 수는 없었지만, 내 아들만큼은 그래도 아버지이기에, 참 많이도 걱정하고, 가슴한 구석이 시려오는 그런 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기적 바램이 차오른다.
아들이 보기에 별 볼일 없는 아버지, 모처럼 집에 들어가면, TV 앞에 앉아있거나, 늦은 아침까지 아침밥도 마다한 채 쿨쿨 잠만 자는 아버지, 남들에게는 가족과 대화하라며,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감정을 절제해야한다고 말하면서, 아들에게는 툭하면 소리 지르고, 가끔은 주먹도 올려치는 못된 아버지…
부부간에 화목해야 한다며 아빠, 엄마는 집에 들어가면서 ‘우와, 천국이 따로 없다. 집에 들어오니 정말 살 것 같다. 평화롭다.’라고 느끼는 이들이 과연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자녀들에게는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윽박지를 수 없는 것이다. 부모도 집이 끔찍한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집에 들어와서 기쁨을 느끼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라며 홈 스위트 홈을 만드는 것이 자녀탈선의 가장 큰 예방이라고 부르짖으면서, 막상 우리 집은 그리도 홈 스위트 홈이었나!
어쩌다 한번 만나는 집사람과 허구헛날 큰소리에 목청을 높이고, 결국은 획 돌아앉아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삶을 획 돌려서 다시 한번 되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 함께 하기엔 부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꼭 해주고 싶은데… 아주 아주 늦었지만, 그래도 많이 미안해하는 아버지를 이해해준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아들아! 용서해다오. 이제, 핑계대지 않으마. 너희들이 다 커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그 부분들을 함께 하고 싶구나. 아버지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내게 아쉬웠던 것들을 너희들에게 설명하고 좀 더 가까이서 너희들이 그리는 삶 속에 한 획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다오.
물론 선교회의 모든 아이들이 다 내 아이들이고, 곧 내 인생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로 인해서 너희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다. 큰 아이의 방황도, 둘째의 이기적인 태도도, 셋째의 자신 없어하는 모습도, 막내의 비어있는 가슴도… 조금은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마.
그래서 후회없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언제나 너희들에게 따뜻했던 기억이고 싶다. 너희들의 시간 속에 가장 소중한 추억 가운데 한 부분으로 기억되는 존재이고 싶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깊은 밤에도 무섭지 않고 든든할 수 있음은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시작해보마.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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