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9-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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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만들기

지난 주 푸드 섹션에 큰 실수가 하나 있었다. 이미 눈치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푸드 1면 커버스토리에 큰 제목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옆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 한 장 올라앉은 것이다.
출근 전에 집에서 신문을 받아본 나는 ‘으악!’ 소리와 함께 신문사로 달려나왔다. 와보니 편집자도 일찍 나와 이리방, 저리방 뛰고 있었다. 뛰면 뭐해. 이미 인쇄, 배달 다 끝났는데…
어떻게 그런 실수가 있었을까, 신문사가 발칵 뒤집혀 알아보니 편집 조판이 끝난 면이 컴퓨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 건드려져 제목은 날아가고 사진이 올라붙었으며 그대로 공무국으로 넘어가 인쇄된 것이다. 원래 그 자리엔 ‘맛있는 먹거리에 반해 슬랏 머신은 뒷전’이란 글자가 두 줄로 큼지막하게 나가도록 편집되어 있었다.
모든 업무가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아주 가끔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데 섹션 커버의 제목이 날아가버린 대형사고는 처음이라 그 참담한 심정은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지난 주 푸드 섹션은 라스베가스 특집이며, 나 혼자 7개 면을 모두 취재하고 글쓰고 사진 찍어 만든 특별판이었으니 얼마나 더 기가 막혔겠는가.
불행중 다행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냥 좀 사진이 많다, 싶었다는 사람도 있고, 조그만 소제목이 메인 제목인 줄 알고 글자사이즈가 좀 작다고 생각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도 좋을 실수를 오늘 왜 나는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일까? 이 기회를 빌어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신문을 만드는 가를 설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일보 독자들은 구독을 통하여 신문을 보거나 가판대에서 정해진 가격의 동전을 넣고 한 부씩 꺼내서 신문을 본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한인 중에 ‘신문 도둑’이 있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남의 집 혹은 업소 앞에 배달된 신문을 훔쳐다보거나, 가판대에서 한꺼번에 여러 부를 꺼내 남들에게 선심 쓰는 사람, 남이 꺼낼 때 옆에 섰다가 ‘저도 하나…’ 하며 빼가거나, 아예 가판대 문이 닫히지 못하도록 조처해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은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한국일보는 9시 출근이다. 출근과 동시에 기자들은 신문, 인터넷, 통신들을 섭렵하며 밤사이 일어난 뉴스를 스크린하느라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다. 수많은 정보와 뉴스가운데 한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버젯을 만들어 부장들이 10시에 편집회의를 한다. 오늘 지면에는 어떤 기사들을 넣고, 탑은 뭘로 하며, 사진은 어떤 걸 쓰고, 경제 섹션에는 어떤 기사를 올리고, 각 특집 섹션의 이번 주 커버스토리는 무엇이며… 등등을 결정하는 시간이다.
회의가 끝나면 취재 지시에 따라 기자들이 취재처로 나간다. 사진부도 함께 뛴다. 점심 식사후, 또 한차례 편집회의가 열리고 오전과 달라지는 상황이 있는지 살펴보아 다시 판을 짠다.
오후 4~6시, 가장 바쁜 마감시간이다. 이때부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부장들은 기사를 데스크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 기사를 편집부가 받아 제목을 뽑고 사진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기사들이 잘려나가고 축소되고 없어지고, 사진이 너무 많을 때는 아까운 사진도 그냥 사라지며, 때론 작은 기사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커지는 경우도 있다. 제목 사이즈, 글자체, 기사와 사진의 배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쳐 판이 완성되는 것이 대략 7시, 교정부의 일차 점검 후 다들 퇴근하면 야근 팀이 남아서 밤 11시까지 사건 사고등 비상상황에 대비해 계속 뉴스를 점검한다.
마지막 강판이 끝나는 것은 밤 11시30분. 그때부터 새벽 4시까지 공무국에서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윤전기가 초고속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정 무렵부터 모여든 수십명의 배달 직원들이 따끈따끈하게 인쇄된 신문을 차곡차곡 싣고 새벽길을 달려나간다.
그동안 편집국만 일을 하나? 하루 150여 페이지의 신문에 붙는 수많은 광고를 보라. 그 많은 광고가 붙기까지 광고국도 숨가쁘게 돌아간다. 세일즈 팀은 광고를 받고, 디자인 팀은 광고를 만들고, 제작국은 만든 광고를 각 면에 맞게 붙인다.
그렇게 신문이 나오도록 안에서는 총무국이 움직이고, 사업국이 일하며, 판매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이토록 열심히 만들어도 앞서 말한 것처럼 실수라도 발생하면 펄펄 뛰며 자아비판에 들어가는 곳이 신문사인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종일 뛰며 만드는 신문을 당신은 공짜로 봐도 좋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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