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매너 이야기 수연례

2005-09-2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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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영어로는 birthday라고 합니다.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의 생일에나 일률적으로 쓰는 낱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생일은 당사자의 연령이나 지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불립니다.
손아랫사람이 태어난 날은 생일이라고 표현하며 웃어른의 생일은 생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현이나 위인인 경우는 탄신일이라고 합니다.
수연(壽筵)은 어른 생신에 아랫사람들이 연회를 준비하고 어른들에게 술을 올리면서 오래 살라고 축수하는 의식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생신에 수연을 베풀려면 경제적 능력도 어느 정도 있고 사회인으로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연령이어야 할 터인데, 부모나이 60이면 대개 그러한 자식을 슬하에 두게 된다고 해서 60을 기준으로 그때부터 수연을 베풀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수연례는 이름 있는 생신을 골라서 베푸는 것이 우리 관례입니다. 육순, 환갑, 진갑, 미수(美壽), 고희(古稀), 희수(喜壽), 팔순, 미수(米壽), 졸수(卒壽), 백수(白壽) 해서 10가지를 꼽습니다.
한국의 생일은 모두 한국 나이로 지내지만 환갑(또는 회갑)만은 만으로 계산합니다.
수연중에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육순입니다. 한국 나이로 60, 만으로 59세 되는 생일입니다. 다음으로는 환갑(還甲)입니다. 회갑(回甲)이라고도 합니다. 한국 나이로 61세, 만으로 60이 되는 생일입니다.
다음에는 진갑입니다. 만 61세 생일입니다. 한국에서는 노인들의 생일은 같은 자가 겹치는 해를 특별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66, 77, 88, 99입니다. 진갑 다음에 오는 66세 생일을 ‘미수’라고 합니다. 만으로는 65세인 셈입니다.
70세면 ‘7순’이라고도 하고 ‘고희’라고도 합니다. 만으로 69세가 됩니다. 고희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 나오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문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인생이 70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77세 때의 생신을 희수, 80세 생신을 팔순, 88세 때의 생신을 미수라고 합니다. 90세 때의 생신을 ‘졸수’라고 합니다. ‘졸’자는 ‘마칠 졸’자입니다. 졸자를 초서로 쓰면 九十이라 쓰여지는 데서 온 말입니다. ‘졸수’를 잘못 해석하면 “인생을 졸업하였다” “다 살았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자손들이 입에 담기 어렵게 생각하므로 ‘구순’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마지막으로 99세 때의 생신을 ‘백수’라고 합니다.
수연례는 자손들이 어른에게 술을 올리는 헌수 절차와 외부 손님을 대접하는 연회 절차로 나뉘어서 행합니다. 수연례는 헌수를 하기 쉽게 배석을 합니다. 큰 수연상을 격식에 따라서 차리고 그 뒤에 당사자 부부가 앉고 혹시 당사자보다 웃어른이 살아 계시면 그 옆자리에 모십니다. 현대 말로 표현한다면 head table이 됩니다. 자손들은 큰상 앞에 차린 술상에 나가서 순서대로 당사자에게 술을 따릅니다. 이러한 헌수의 절차가 끝나면 초대한 손님들과 어울려 즐거운 잔치를 갖습니다.
59세 생신인 육순부터 99세 때의 졸수까지 이름 있는 생신을 꼽아보면 꼭 10번이 됩니다. 40년 동안에 10번이니까 4년마다 한번씩 치르게 되는 셈입니다. 노인이 되면 쓸쓸해지고 외로워집니다. 수연은 그러한 처지에 처해 게시는 웃어른을 자손들이 함께 모여서 즐겁게 해 드리는 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하던 한국 고래의 도덕관과 윤리관, 그리고 우리의 재래의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는 형식주의와는 관계없이 웃어른을 올바로 섬긴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이니 만치 우리는 어떤 고장에서 살던 간에 수연례는 애써 지키는 것입니다.

전유경 <‘홈스위트홈 리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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