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 대면하기

2005-09-2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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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엔 고통이 있다.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고통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고통을 당할 때 건강한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엔 추한 흔적들이 남는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존재의 웰빙을 위해서 고통도 건강하게 겪어내야 한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여러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건강치 못한 방법으로 고통을 대하는데, 먼저 고통을 부인한다. 이혼한 후 즉각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성급한 관계를 시작하며 이혼의 상처를 부인한다. 어떤 사람은 이사를 가면, 다른 직장을 얻으면, 다른 사람들을 사귀어 잃어버린 관계를 대치하면 고통이 피해질까 이리저리 흥정도 해본다. 어떤 사람은 무엇인가에 탐닉함으로 고통을 잊어 보려고 한다. 음식을 지나치게 먹거나, 술을 마셔서 자신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마약을 하면서 거짓으로 행복한 느낌을 느끼려고 한다. 또 도박을 하거나, 성이나 도색잡지에 탐닉하고, TV에 빠져 자신의 고통을 잊으려고 한다.
어떤 이는 분노를 나타냄으로 고통을 잃으려고 한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가지고 끊임없이 그를 향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복수에의 열망으로 에너지를 그곳에 모아 고통의 괴로움을 분노로 대치한다.
또 어떤 이는 신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자녀나 배우자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며 고통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동정에 빠져서 희생자의 입장으로 모든 괴로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핑계하며 고통을 피하려 애쓴다.
이렇듯 사람들은 빠른 시일 내에 고통을 잊기 위해 임시응변적 반창고를 붙이며 치유에의 지름길을 시도하지만 고통을 통한 진정한 치유와 성숙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무슨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 못지 않게 고통 중에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통의 치유가 빨리 일어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몸의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 마음의 상처도 아무는데 시간이 걸린다.
고통을 어떻게 건강하게 이겨내나? 고통을 대면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가 등 삶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고통의 시간들이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지 못하고 더욱 비정하고, 냉소적이고, 분노로 뭉친 사람으로 망가지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지금 캄캄한 고통의 어두움 속에 있는가? 행복의 밝은 해를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지는 해를 좇아 서쪽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동쪽 어둠 속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의 밤을 대면하겠다고 결정한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의 해돋이를 향한 첫 번째 건강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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