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동상은 미술작품

2005-09-2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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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프랑스는 일찌감치 수도 ‘파리’를 싸우지 않고 적에게 개방하였다. 박물관 미술관 등의 그 방대한 미술품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 막판에 일본 본토 전역에 포탄을 깔다시피 심한 폭격을 가하면서도 ‘교토’는 다치지 않았다. 유서 깊은 교토의 고미술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금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어느 미개국 정글 속에 사는 식인종들의 얘기가 아닌가 귀를 의심케 한다.
‘맥아더 동상’은 조각가 김경승의 작품이다. 노동자들이 아무렇게나 부어 만든 쇠뭉치가 아니다. 고 김경승 선생은 우리 나라 서양조각 정통파의 거장이었다. 동경 우에노 미술 조각과에 다닐 때 그린 데생의 정확성과 아름다움은 후배들에게 두고두고 전설로 남아있다. 해방 후 서울 미대, 홍익대, 이대 미대를 두루 돌며 한국 조각계의 기틀을 쌓고 조각가들을 키웠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조각가들의 스승들을 키워낸 분이다.
쇠파이프라니! 누가 감히 그 분의 작품에 손을 대겠단 말인가! 60년대 일본에서 ‘가꾸마루’파라고 했던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동경대학 ‘야스다 강당’에 불을 지르고 무법천지를 만들었던 폭력배 학생들의 기사를 보며 “일본은 이제 완전히 망했구나!” 했었는데 하필이면 2005년 세계 속에 우뚝 섰노라 큰소리치는 한국에서 60년대 일본을 본받고 있다 하니 통탄할 노릇이다.
1964년 이탈리아 ‘피렌체’ 거리를 나는 바보같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걷고 있었다. 발에 차이는 것이 조각이요 가는 곳마다 명화의 향연이니 행복한 눈물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을 몇 번이고 다시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하며 그 오묘한 선의 흐름에 발을 떼지 못했던 일을 머리에 그려본다. 만약 지금 ‘골리앗’의 후손들이 미켈란젤로의 그 다윗상이 못마땅하다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나타난다면? 정신이 오싹해진다. 골리앗을 돌팔매로 단숨에 꺾은 다윗처럼 인천 상륙작전이라는 비상한 전술로 악의 허리를 꺾고 맥아더 장군은 우리를 구해주었다.
인천에서 난리 치는 그대들은 6.25를 얼마나 아는가? 나는 피난처에서 폭격소리에 놀라 첫아기를 조산하였다. 몸은 아프고 불편하고 배가 고프고 두렵고 가지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까만 쌕쌕이 비행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연합국이 우리를 버리면 어쩌나”하고 속을 태웠다. 폭격기가 와서 포탄을 투하하면 다음 순간에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개의치 않고 갖가지 어려움을 견디며 연합군이 공습을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느 날 인천 쪽에서 쿵쿵 하는 대포소리가 들려왔다. 뉴스들이 빨라서 “맥아더 장군 진두지휘 아래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며칠동안 방안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콩 볶는 소리 같은 소총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드디어 우리 해병대가 뒷산에 왔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신이 나서 달려나갔다. 우리 국군의 늠름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서였다. 어떤 식으로 이 기쁨을 나타낼꼬. 그들을 얼싸안고 춤이라도 춰야지!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곳에는 진흙 투성이의 너덜너덜해진 작업복을 걸치고, 먼지와 땀에 찌들어 땟국 물이 꾀죄죄한 얼굴에는 날카롭게 번득이는 두 눈만 보이는 더럽고 피곤에 지친 군인들이 환영 나간 우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삽으로 참호를 파고 있었다. 인천바다에서 적전상륙을 하고 젖은 발로 계속 뛰고 기어다니고, 피가 터지고 참혹하여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전쟁이었다. 이게 어찌 우리 해병대만의 모습이겠는가? 연합군은 이렇게 싸웠다. 우리를 위해.
장교 한 사람이 오더니 “아직 안전하지 않으니 들어들 가세요”했다. 우리는 너무나 참담한 광경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돌아섰다. “저 무거운 배낭에 삽까지 소총을 단단히 잡고 신경을 곧추 세우며 한 발자국씩 적중 돌파를 하여 이곳까지 왔구나. 도중에 전우의 마지막 모습도 보았겠지…”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1950년 9월28일 중앙청에 태극기가 올라가고 우리들은 손에 손을 잡고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맥아더 동상’은 고 김경승 선생의 걸작 중의 걸작이다. 맥아더는 작가가 세운 그 자리에, 내가 35년 전 쳐다보았던 그 모습대로 당당하게 서있어야 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 저 철딱서니 없이 핏대만 올리는 자들의 가족일가친척들까지도 통틀어 모든 이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요, 비상한 전략을 품은 결단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김순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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