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식인가? 작품인가?

2005-09-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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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인가?   작품인가?

▲번쩍이는 글래스와 매끄러운 메탈을 사용한 인테리어가 특별한 조명과 함께 대단히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시부야의 메인 룸.

MGM 그랜드 호텔내

■ 일식당 시부야 (Shibuya)

모던한 인테리어 … 일본 정통+미국의 맛·테크닉, 입안에서 살살~
매코스마다 사케 페어링…너무 지나친 서비스가 부담스러울 지경


최고급 일식당 시부야(Shibuya)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화가 좀 났다.
왜 우리는 이런 식당을 못 만드는 것일까? 왜 맛있는 우리 한식은 이렇게 멋지게 프리젠테이션 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네 음식을 악! 소리나도록 예쁘게 만들어 미국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일본인들이 얄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크고 멋진 디시에 사시미 딱 세점, 스시 딱 두 개, 고기 서너점을 올려 내오면서 돈은 엄청나게 받아내는 일식당들을 보면 그 상업정신이 놀라우면서도 속이 뒤틀리는게 솔직한 심정.
작년 7월 MGM 그랜드호텔 내 문을 연 시부야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하이클래스 일식당이다. 울트라 모던한 디자인이 얼마나 힙(hip)하고 쿨(cool)한지 인테리어에서부터 기가 죽는데 테이블과 그릇, 식기, 사케 술병과 잔, 하나하나가 다 예술이다.
이 식당은 3개의 다이닝 공간으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가 입구에서 들어서면서 마주보이는 50피트의 대리석 스시 바. 화려한 화면이 움직이는 대형 스크린을 배경으로 4명의 스시 맨이 역동적으로 일하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래픽하다.
또 다른 공간은 컬러풀하게 장식된 테판 룸. 이곳에서는 화강암 테이블에 앉아 테판야끼 디너를 맛볼 수 있다. 가장 넓은 메인 룸은 번쩍이는 글래스와 매끄러운 메탈을 사용한 인테리어가 특별한 조명과 함께 대단히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메인 룸에서는 메뉴에 나와있는 각종 일품 요리(a la carte)들을 시켜먹을 수 있다.
셰프 에이지 타카세의 메뉴는 일본 정통요리에 현대 미국의 맛과 테크닉을 가미한 요리들이다. 예를 들면 캐비어 곁들인 튜나 타르타르(Shibaki Tuna Tartar with Mountain Caviar), 미소양념 연어(Miso Wild Salmon), 고베 소고기 타다키(Kobe Beef Tataki) 등이 유명하다.
우리가 먹은 것은 세가지의 차가운 전채(Yellowtail yuzu sauce, Snapper wrapped in garlic, Kobe beef tataki)와 두가지의 더운 전채(Kobe beef short rib with Fois Gras, Rock Shrimp tempura wrap), 그리고 스시 플레이트(튜나, 옐로테일, 우니, 연어 등)였는데 그 신선도가 과연 최고급 일식당 다웠다. 고베 소고기 역시 그 명성대로 입에서 살살 녹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리마다 얼마나 알뜰하게 양이 적은지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없는 것이 흠.
시부야에서의 식사 경험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진짜 와사비’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와사비가 식물의 뿌리라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스시 플레이트가 나올 때 주방에서 한 셰프가 따라 나오더니 “진짜 와사비를 갈아드린다”며 직접 강판에 와사비를 갈아 우리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와사비 뿌리는 우리가 보통 보는 것과 똑같이 연두색이었으며, 맛은 맵기가 약간 덜하지만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톡 쏘는 맛이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너무 예쁘고 앙증맞아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디저트들. 맛이 얼마나 좋은지 일식당에서 그렇게 맛있는 디저트를 먹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특히 두부로 만든 세가지 플레이버의 디저트(Tropical Fruit Tofu)는 아몬드, 파인애플, 두유 등 세가지 다른 색과 맛으로 만들어져 나오는데 정말 뜻밖의 맛이었다.
그러나 시부야의 가장 큰 특징은 사케(sake)에 관한 한 미국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전문적인 식당이란 점이다. 사케 전문가로 유명한 존 컨트너와 사케 소믈리에 에릭 스완슨은 이곳에서 서브하는 모든 음식에 어울리는 사케를 갖춰놓았을 뿐 아니라, 고급 서양식당에 와인 페어링이 있는 것처럼 ‘셰프 테이스팅 메뉴’의 매 코스 음식마다 ‘사케 페어링’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두가지 사케를 맛보았는데 전채요리에는 딸기 향이 독특하고 상큼한 카이카(Kaika) 사케를 곁들였고, 메인 요리에는 좀더 전통 사케의 맛이 나는, 약간 더 무겁고 진하며 그윽한 리하쿠(Rihaku) 사케를 마셨다.
한편 시부야에서 약간 부담스러웠던 것은 너무 지나친 서비스였다. 한번 음식이 나올 때마다 모든 그릇과 식기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는데 나오는 음식의 양이 너무 적어서 접시가 늘 새것인 채로 있는데도 계속 갈아주는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냅킨마저도 새것이 올라와 있고 테이블 주위에는 각각 다른 임무를 맡은 웨이터, 웨이트리스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물도 따라주고, 접시를 치워가고, 새 접시를 내오고, 주방에서는 쿡이 직접 요리를 들고 나와 설명하고, 사케 소믈리에는 사케 설명과 함께 따라주고, 간간이 매니저가 와서 뭐 불편한 것이 없는가고 묻고… 서비스란 편안하고 기분 좋아야 하는데 너무 극진하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시부야에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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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의 실내. 오른 쪽 대형 스크린이 장식된 곳이 50피트 대리석의 스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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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나 타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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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는 미전국에서 사케에 관해 가장 전문적인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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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양념 연어.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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