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좭ola! amigo

2005-09-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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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404회. 스페인 제국 12. 레판토 해전 1

투르크가 육지로부터 유럽을 침공한 전투인 빈 공방전은 술레이만 1세 때 벌어졌다. 1529년 발칸반도의 대부분과 동유럽 일대를 정복한 술레이만 1세는 서유럽의 교두보인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하였다.
투르크의 침공을 대비하여 성벽을 개축하고 높였으며, 해자를 깊게 파고 또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해온 오스트리아군은 15일에 이르는 공방전 동안 성을 잘 방어하였다.
비가 자주 오는 데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보급선이 길어져 식량 등 군수물자의 수송이 어려워지자 술레이만 1세는 전투를 중단시키고 철군하기로 결정하였다.
13세기 몽골군의 서유럽 정복 직전에 구사일생했던 유럽은 250여년만에 다시 쳐들어온 아시아인의 침공을 겨우 막아낸 기적과 같은 공성 성공에 모든 교회의 종을 울리고 축포를 쏘며 환호하였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533년 투르크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서유럽은 겨우 이슬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다 쪽에서는 해군의 전통이 없는 투르크였으나, 지중해를 장악하던 해적들에게 투르크 해군의 창건을 위임하였으며, 레판토 해전에서 신성동맹 함대에 패전할 때까지 동지중해를 장악하였다.
16세기말인 1571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서진에 맞서 교황청과 베네치아 공화국 그리고 에스빠냐는 신성동맹을 체결하였다. 이 동맹의 목적은 투르크의 지중해 제해권을 빼앗아 더 이상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투르크 함대와 신성동맹 연합함대간의 해전이 바로 해전 사상 유명한 레판토 해전이다. 공교롭게도 16세기말에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만한 해전이 세 곳에서 벌어진다.
첫째가 1571년의 오스만의 유럽 침공 야욕을 꺾은 레판토 해전이고, 두번째가 1588년 욱일승천하던 에스빠냐의 무적함대가 영국 함대에 의해 박살이난 무적함대의 몰락, 세번째가 조선 선조 때인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쳐 계속된 조일전쟁(임진왜란)의 이순신 제독과 일본 함대와의 해전 중 명량해전, 한산도해전, 노량해전 등의 해전이다. 레판토 해전에서의 에스빠냐의 승리로 에스빠냐의 왕 펠리페 2세의 성가가 드높아졌었으나, 1588년 무적함대의 패전으로 제해권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은 해양 강국으로 부상을 시작하고 장차 대영 제국의 발판을 놓게 되는 시점이었으며, 먼 동양의 극동에서는 조선과 일본이 건곤일척의, 국가의 존망이 달린 전쟁이 벌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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