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와 바뀐 역할

2005-09-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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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초반의 박씨는 90세가 다 된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서 밤낮으로 엄마의 침대 옆에서 근무하는 전속간호사가 되었다. 엄마가 노인 아파트의 목욕실에서 넘어지자 병원에 입원하였다.
두달 입원하신 동안 3남매 중 박씨가 엄마간호의 책임을 맡았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식들은 모두 독립한 상태인데다, 동생들은 배우자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내려진 결정이었다.
욕창의 적절한 관리를 위해 꼼짝없이 누워만 계시는 엄마의 자세를 매 한두 시간마다 움직이고 바꿔 드려야한다. 손에 힘이 없어서 식사 또한 모든 음식을 떠서 먹여드려야 한다. 대소변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시는 경우에는 기저귀와 침대보와 옷가지등을 모두 갈아야 한다. 빨래더미가 쌓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 엄마가 젖먹이 시절의 나를 키울 때 이러한 수고와 보살핌을 아끼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곤 한다.
엄마의 수고가 고맙고 감사하고, 병원 침대에 누운 채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당신 자신의 몸을 돌리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엄마의 현재 처지를 보면 엄마가 안쓰럽고, 불쌍하고, 그만 목이 메이고 만다.
박씨는 간병하는 일에 관하여 주정부로부터 하루에 일정시간 만큼 시간당 보수를 받고있다. 그래서인지 두 동생들은 엄마방문을 오면 앉아서 이야기만 한다. 어떠한 궂은일도 전혀 하려들지를 않는다. 오히려 감사관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박씨에게 책임을 물으며 간호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나무라기에 바쁘다.
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늘 깨어날 준비가 된 상태에서 선잠을 자기 때문에 박씨의 신체적 피로는 자꾸만 누적되어갔다. 몸이 지쳐가는 동안에 마음 또한 짜증과 화로 채워지고 있었다. 또한 동생들에게서 격려나 위로의 한마디 대신에 비판과 책임추궁의 말만 듣고 있노라면 이 모든 일상의 책임과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일곤 한다.
동생들이 괘씸하고 서운하고 밉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 돌보는 일은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재정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박씨의 입을 다물게 하곤 한다. 하지만 남동생과 여동생을 포함하여 모두가 같은 자식인데 왜 박씨 “혼자서 책임을 다 맡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미치면, 혼자서 엄마의 엄마역할을 맡은 자신이 밉고 자꾸만 화가 난다.
주야 간병을 시작한지 6개월이 넘으면서 이제는 박씨 자신의 몸이 이곳 저곳에서 쑤시고 통증이 온다. 하지만 타인의 손길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엄마 앞에서 자신의 통증을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상담을 받아보고서 박씨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경험했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들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매일 겪는 고충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내용들을 나누며 동생들에게서 받지 못했던 정서적인 격려와 이해 받는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


이 은 희
<결혼가족상담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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