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를 내는 나쁜 목사

2005-09-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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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가 치민다. 목사도 화를 낼 줄 알고, 욕도 할 수 있으며, 싸울 줄도 아는데, 아주 많은 이들은 어떻게? 목사가 그럴 수는 없다며… 목사는 무조건 “예, 예” 하면서 다른 이들의 비위를 당연히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교회에서 때로는 부모님들로부터 욕도 먹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도 감수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자신들의 자녀를 선교회에 데려다 놓는 것이 마치 선교회에 커다란 적선이라도 하는 냥 의기양양한 부모도 간혹 있는가하면 자녀가 선교회에만 들어오면 그 다음날부터 완전 개조되어 바른 생활 정직, 완벽한 인간이 되는 줄 착각하는 분들도 있다.
선교회는 결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과 노력과 관심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이러한 방법, 저러한 태도 등을 케이스에 따라서 달리 접근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때는 과연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자문을 하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간혹 진짜루… 정말… 몰상식한 인간, 덜 떨어졌던 옛날의 한영호보다도 더 못한 부모를 대할라치면, 속에서 울화가 목젖까지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부들부들 떨릴 때도 있다.
얼마 전부터 선교회의 주방이 비어있어 고민하던 차에 봉사해 주시겠다는 권사님이 계셔서 크게 도움을 받고 있다. 그분은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하여 우리를 섬기며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계신다. 특히 손수 당신 뒷마당에서 캐온 나물, 김치, 홈메이드 케익 등으로 나눔의 아이들의 건강을 그야말로 웰빙으로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다.
그분께 우리 박간사님이 냉면이 먹고 싶다며 간청을 들였더니, 집에서 새콤하게 담근 동치미를 한 통이나 무거운데 가져오셔서 손수 육수를 만드시고, 고기, 오이, 무, 거기다 계란까지 올려 시원하고 정갈하게 정성껏 물냉면을 만들어 주셨다.
모두가 모여서 맛있게 먹으려는데…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아이가 냉면그릇을 들고 감사하기도 전에 벌컥벌컥 마셔버렸다는 것이었다. 이를 본 스탭 중 하나가 “감사기도 끝나고 먹어야지”라며 선교회 규칙대로 이야기하자 그 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냉면을 바닥에 그대로 집어 던지고 욕설을 하며 튀어 나갔다.
권사님의 정성은 바닥에 고스란히 내동댕이쳐 버려졌고, 순간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던 스탭은 권사님, 어른 앞이라 꾹 참고 그 시간을 간신히 넘겼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잘못한 아이는 그대로 짐을 싸서 냉큼 선교회를 도망쳐버렸는데, 그 도망친 다음날 아이의 엄마가 선교회 오피스에 와서 기도하고 먹으라고 야단쳤던 스탭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네가 뭔데 우리 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기도 안 한다고 쫓아내는 곳이 선교회냐?’목사인 나에게는 ‘아저씨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막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화가 났다. 속이 끓기 시작했다. 세상이 아무리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경우를 모르는 정도가 지나쳤다. 결국 나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당장 선교회에서 나가라고.
물론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도 자식을 기르는 입장으로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귀중한 정성이 담긴, 지구의 어느 한편에서는 한 그릇의 음식이 없어서 죽어가는 생명이 있는데… 그 음식을 바닥에 집어던진 자신의 자녀에게 잘못이 하나도 없다니… 당신의 자녀가 버려진 음식처럼 어쩌면 버려질지도 모르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엄마는 망각한 듯하였다. 그래서 나는 불같이 화를 내였다.
난 화를 내는 나쁜 목사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가끔은 이렇게 화를 낼 것만 같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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