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5-09-1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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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줄리아(하)

나의 부탁에 줄리아씨는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있나보다. 괜히 물어보면 미안할 것 같아 부모모임에 가서도 다른 말만 하고 왔다.
내가 부탁했던 것에 대해 내 스스로가 잊을 무렵 줄리아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드디어 승욱이같이 못보고 못 듣는 아이중에 와우이식을 한 학생의 엄마와 전화가 연결이 되었다고 했다. 그 엄마도 나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고, 가까운 시일 안에 줄리아씨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다고 했다.
대단하다. 어떻게 찾았을까? 줄리아씨는 청각, 시각장애협회에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캘리포니아주는 청각, 시각장애협회가 잘 되어있다. 헬렌 켈러 재단이 이쪽에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 엄마를 만나기로 한날, 난 서둘러 약속시간에 맞춰갔다. 그 엄마의 이름은 ‘마리아’ 그녀는 나에게 여러가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자료를 가지고 왔고, 아들 사진이며 아이를 키울 때 쓰던 여러가지 교구까지 챙겨서 왔다.
‘마리아’… 그녀는 멕시코에서 온 이민자다. 아이가 태어나서 잘 못 보는 것을 알고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아이가 잘 못 보는데다가 청력도 거의 없어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혼자 멕시코에서 미국까지 왔으니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그녀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으로 난 그녀의 힘든 지난 시간을 읽을 수 있었다.
마리아의 아들은 현재 17세이다. 사진을 보니 너무 잘 키워서 마치 정상아이 같았다. 와우 이식수술은 6세때 받았고, 시력은 9세에 완전히 상실했다고 했다. 그래도 시력이 희미하게나마 있을 때 수술을 해서 엄마의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말을 많이 알아들었었고, 그만큼 말을 빨리 받아들였다고 했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지난 17년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닌 그녀는 모르는 곳이 없고, 모르는 서비스가 없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놀라운 것은 미국으로 온 이후 아이에게 멕시코말(스패니시)을 한번도 쓰지 않았다는 거다.
아이가 언어적으로 혼란스러울까봐 철저하게 영어만 가르쳤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2년만에 말문이 트였고, 지금은 너무 말을 잘해서 변호사같다고 했다.
자신도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이와 나란히 학교에 가서 앉아 있었고, 이제야 아이가 독립적으로 모든 것을 할수 있을 때가 되니 나같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은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열심히 아이를 키운 그녀를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인지도 새삼 느꼈다. 나는 가족도 여기 있고, 한국말도 맘대로 하고, 또 중요한 것은 승욱이는 지금 그녀가 미국에 왔을 때보다 훨씬 편하게 생활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줄리아, 마리아 그리고 나… 줄리아씨의 작은방에서 우린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었다.
마리아는 앞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나도 걸어가야할 것을 염려하며 여러가지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었다.
말의 핵심은 ‘아이를 정상아처럼 키워라’였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측은해하거나, 안쓰러워하지 말고 강하게 독립적으로 키워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린 시간관계상 며칠 밤을 새도 못 다하는 이야기를 접어야했다.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은 시간을 갖기로 서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줄리아씨의 도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난 언제나 승욱이를 애기처럼 생각하고 매일 안고, 업고, 밥도 떠먹여 주고… 강하게 키우라는 말이 좀 두렵다. 어떻게 강하게 키우라는거지?
많은 궁금증이 풀린 반면 많은 숙제를 안고 난 다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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