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맘 켕기는 날

2005-09-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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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 좀 보여 주시겠어요?” “오늘은 스케줄이 꽉 찼는데요.”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서 그래요”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에이전트들은 비상에 들어간다. 어느 지역에서 가격대는 어느 정도이고, 집 스타일은 이렇고, 내부는 저렇고, 학군과 기타 바이어가 원하는 모든 사실들을 파악 하는 것이 첫 순서이다. 그리고 에이전트는 그때부터 손님이 마음에 들 집들을 확인해 나간다. 지금 까지 나와 있는 집들의 매매 현황을 다시 파악하고, 새로 막 나온 매물들은 미리 에이전트가 프리뷰까지 마치고 난 후에야 사무실에서 바이어를 맞이한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손님의 귀중한 시간을 아끼고 원하는 집들을 보여주게 됨은 물론이고, 일일이 방문 약속을 미리 해놓아야 만이 셀러들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언젠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비행기를 타고 동네 상공을 막 지나며 착륙할 때 창밖을 내려다보니, 마침 내가 늘 오가며 일하고 있는 동네의 선명한 길거리와 나의 집과 마당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나의 일터 인지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역시 직업은 못 속이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내에서는 10분 후에 있을 착륙 안내 방송이 나왔고, 몇 시간 동안의 여행이 마감되는 순간 까지도 스튜어디스들의 서비스가 바쁘게 착착 진행되어 감을 보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부동산업무 서비스와 비교해 보기도 했다.
기내 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가 다 그렇겠지만, 부동산매매에서의 서비스도 대충 넘길 만한 서비스가 아님을 더욱 느낀다. TV 한 대 사는 것도 아니요, 자동차 한 대 사는 것도 아니다.
처마 밑에 짓는 새 집들도 정교하고 정성들여 짓는데 하물며 오랜 기간 머무를 가족들의 편안하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정하는 것인데 어찌 대충 몇 집 보고 결정 할 수 있겠는가.
복서 알리는 나비처럼 날다가 벌처럼 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무리 급해도 철저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듯 바이어들도 좋은 집을 찾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매물들을 보면서 집에 대한 감각을 고객 자신이 피부로 직접 느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내어야 하고 많은 약속들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낼 정도로 수월하지만은 않다. 시간에 쫓기고 또 쫓긴다. 그런데 시간에 쫓기면서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난주에도 오늘도 다음 달에도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삶을 당연히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러한 바쁜 생활의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운데 손님과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시간들을 3년과 1년 단위로, 그리고 다시 매달과 하루의 반나절 단위로 다시 나누어 약속하려 애를 쓴다. “인간은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이다.” 라고 니체도 말했으니 말이다.
이글을 쓰는 날 오후에는 손님과 약속한 시간인데 오시지도 않고 연락도 두절이다.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지 하고 기다리지만 끝내 소식이 없어 김소월의 시구로 바람맞은 약속의 시간에 멍해진 맘 달래고 만다.
오실 날/ 아니 오시는 사람!/ 오시는 것 같게도/ 맘 켕기는 날!/ 어느덧 해도 지고 날이 저무네.


케니 김

(909)641-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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