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오! 줄리아 (상)

2005-09-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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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트레이시 클리닉의 부모모임’에 오는 부모들은 온통 외국 사람밖에 없다. 동양사람도 미야 엄마와 나 단둘뿐이다. 어느 날 저녁은 부모모임이 있는 클리닉으로 들어가면서 혼잣말로 ‘휴… 이 LA 바닥에 한국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 곳에는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네. 한 사람만 만나봤으면 좋겠다. 이 클리닉에는 한국아이도 한 명도 없나보네…’
나를 따라 다니는 통역사도 영 신통치를 않고, 은근히 짜증이 밀려오려고 하는 참이었다. 지금까지 두달을 다니면서 앞으로 계속 다녀야 하나마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난 집도 멀고 통역사도 보내줘야 하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출석을 체크하러 카운슬러에게 갔다. 난 그녀에게 혹시 이곳에 한국 부모는 참석을 안 하느냐고, 아니 이 클리닉에 있는 프리 스쿨에는 한국 아이가 없냐고 물었다.
응? 너 한국사람 찾니? 카운슬러가 나에게 물었다. “응, 이곳에 한국사람 있음 한번 만나게 해 주면 안 될까?” “그래? 오늘 우리 모임에 한국사람이 있었는데 몰랐구나. ‘줄리아’라고 이 클리닉의 소아정신과 닥터야.” “정말? 아까 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가 한국사람?”
카운슬러는 복도로 나가 줄리아를 찾았다. 카운슬러는 내 앞에 ‘줄리아’를 데려다 놓고 나에게 소개 시켜주고는 다음 부모모임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난 미안한 얼굴로 “늦은 시간인데 불러서 죄송합니다. 전 김민아라고 해요, 다들 승욱이 엄마라고 불러요. 줄리아씨도 그냥 승욱이 엄마라고 불러주세요. 저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보고, 잘못 듣습니다. 물론 말도 못하고요… 저희 아이가 곧 와우이식을 받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클리닉의 부모모임에 나오고 있어요”
그녀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는다. 그리곤 “미안해요, 전 한국말을 잘 하진 못해요. 제가 승욱이에 대해 얼마 전에 들었어요. 이 클리닉 부모모임에 나오고 있는 줄도 알고 있었어요. 오늘 부모모임에도 한국 엄마가 온다는 말을 듣고 한번 들어가 본 거에요. 이렇게 저를 찾으셨으니 제가 승욱이 엄마를 도와주고 싶네요”
그녀는 나에게 “지금 어느 것부터 도와주면 좋을까요? 필요한 것 있음 말씀해 주세요” 난 그녀에게 “한국 아이 중에 이곳 LA에서 와우이식 수술을 한 아이를 찾아서 그 부모와 연결을 시켜주세요. 있을까요?” 그녀는 “찾아볼 게요. 꼭 찾아서 연락해 줄게요” 라고 말해 주었다. 우린 늦은 밤이지만 승욱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했다.
줄리아씨와 헤어진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전, 그녀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드디어 LA에 살고 있는 와우이식을 한 한국아이의 부모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줄리아씨는 몇 날 며칠을 ‘잔 트레이시 클리닉 프리스쿨’에서 졸업한 아이 중에 한국아이를 고르고 그 중에 와우이식을 한 아이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바로 그녀가 가르쳐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벌써 줄리아씨가 전화를 해놓은 상태라 그 엄마와의 전화통화는 아주 수월했다. 난 그동안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같은 처지의 엄마라서 그런지 처음 전화를 거는 나에게 그 엄마는 아주 자세히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승욱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와우이식을 한 그 아이는 지금 11세라고 했다. 지금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고, 말도 제법 잘 한다고 했다. 난 너무 부러운 마음에 수술 후에 얼마쯤 있다가 말을 했냐고 물었더니 1년 정도 스페셜 스피치를 배우다가 말문이 트였다고 했다.
일년… 못 듣고 보는 아이가 일년이면, 못 듣고 못 보는 아이는 얼마나 걸릴까?
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줄리아씨? 미안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한국아이 중에 와우이식 한 아이를 찾는 거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정말 미안한 데요, 한 가지만 더 부탁할 게요. 이번에는 못보고 못 듣는, 그러니까 승욱이와 상황이 비슷한 아이를 찾아줘요. 네? 찾기 많이 힘든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게 있어요. 해주실 수 있죠?”
전화 저 편에서 그녀가 웃는다. “넵! 해볼 게요. 찾아볼 게요”
아, 내가 왜 이리 점점 뻔뻔해지고 염치가 없어지는 걸까. 이래도 되는 건가? 승욱이를 빙자로 내가 너무 여러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으… 이 모든 걸 다 어찌 갚누…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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