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8-31 (수)
크게 작게
뭐 먹으러 갈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상 점심 약속이 잦은 편이다.
취재원들과의 약속도 있지만 부서 회식, 또는 동료들과의 캐주얼 런치도 간간이 있어서 점심 식사는 거의 매일 매식하게 된다.
과거, 성격이 까탈스러울 때는 ‘점심시간만큼은 내 개인시간이니 싫은 인간과는 절대로 밥을 같이 안 먹는다’는 편협한 원칙에 따라 식사 상대를 많이 가렸지만, 지금은 많이 착해지기도 했고 내가 사람을 가리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라 누가 사주겠다는 것만도 감지덕지하기 때문에 웬만한 런치 데이트 요청은 거절하지 않고 있다.
또한 기자는 사람을 가리지 않아야 좋은 기사거리를 많이 발굴할 수 있고 한국사람들은 밥을 함께 먹으면서 친해지고 음식 끝에 정들기 때문에 식사 중에 오가는 대화 내용들이 중요한 기사 소스가 되는 일도 많다. 아울러 기사 관계로 인터뷰할 때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았던 사람도 함께 밥을 먹으면서 전혀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되어 새삼 친해지는 일도 드물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어느 식당에 가느냐’, 이것이 점심 시간마다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이란 점이다.
한인타운에 식당이 수백개나 된다고 하여도 웬일인지 막상 먹으러 나갈 때나 약속을 정할 때는 갈 데가 마땅치 않고, 생각도 잘 나지 않아 서로 결정을 미루고 눈치를 보는 일이 잦다. 하여 가는 데가 늘 비슷하고, 그러다보니 모르는 곳은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어서 가는데가 늘 거기서 거기, 그저 무난하다 싶은 몇군데 중에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게 된다.
더 괴로운 것은 사람마다 나를 보고 푸드 전문가라고 추켜세우며 일방적으로 정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진정으로 나를 푸드 전문가라고 생각하여 그러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단지 무언가를 결정해야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이런 약속은 매우 피곤하기 짝이 없다.
외부 사람과 식사약속을 정할 때마다 주고받는 대화는 누구를 막론하고 항상 다음과 같다.
“어디 갈까요? 좋은 데로 하세요”
“저는 타운을 잘 몰라서요. 정기자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자주 가시는 데가 어디죠? 제가 모실 테니까 마음대로 고르세요”
그렇다고 동료들과의 캐주얼 런치도 쉬운 것이 결코 아니어서 점심시간에 서너명이 함께 차를 탔을 때 오가는 내용은 늘 다음과 같다.
운전하는 사람 “내가 운전하니까 너네들이 정해”
밥을 사는 사람 “내가 돈 내니까 너네들이 정해”
후배들 “선배님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셔야죠”
앉아있는 빈대들 “운전대 잡은 사람이 알아서 모시세요”
제일 나쁜 대답은 “아무데나 좋아요”인데 그 대답이야말로 절대로 아무데나 좋지 않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에게 “여기 갈까요?”하면 “여긴 이래서 좀 그렇다”고 하고 “저기 갈까요?”하면 “저긴 저래서 좀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또 “그럼 거긴 어때요?”하면 “거긴 그래서 좀 그런데요”하는 말이 돌아오니, 서너명만 모여도 입맛과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식당 정하는 일이 하루 일과중 가장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나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맛없는 음식으로 배불리기’이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메뉴를 잘못 선택해 한끼 식사를 잘못 먹고 나면 얼마나 화가 나는지, 이미 부른 배를 다시 꺼트릴 수도 없고 아까운 한끼가 맛없게 넘어간 것이 그렇게 분하고 억울할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맛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 왜 먹고 나서 화를 내느냐고 묻는데, 아무리 맛이 없어도 끼니때 음식을 앞에 놓고 안 먹는 일은 절대로 못하는 것이 또한 나의 결정적 단점이기에, 이러한 유감스런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평소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점심은 또 뭐 먹으러 갈까?
오후 한나절의 근무 컨디션을 결정지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