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8-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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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하우스 인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보면 샌타바바라 거의 다 가서 왼쪽으로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는 ‘클리프하우스 인’(Cliffhouse Inn)이란 예쁜 호텔을 지나치게 된다.
항상 프리웨이를 달리면서 스쳐가게 되므로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온 곳이다.
몇해전 LA타임스 트래블 섹션에서도 이곳을 ‘대단히 로맨틱한 휴양지’ ‘산타바바라의 숨은 보석’이라고 극찬하는 기사를 읽었던 탓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지난 일요일, 바로 그 호텔 식당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교회의 구역식구 15명이 단체로 방문해 파도가 철썩이는 식당 패티오에서 늦은 브런치를 함께 한 것이다.
구역이 너무 세련됐다고? 촌스러운 우리를 세련되게 만들어준 사람이 따로 있으니, ‘초대 구역장’ 노택진·인화씨 부부와 두분의 큰딸 조현숙씨다. 두 분은 지난번에도 우리들에게 정성스런 설 식탁을 차려주셔서 이 주방일기에 등장한 적이 있는 ‘아름다운 노부부’로, 이번엔 딸 현숙씨가 산타바바라에 새로 지었다는 별장도 구경할 겸 조금 특별한 구역예배를 갖자고 초청해 신나는 나들이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평소 구역예배에 잘 나가지 않지만 무슨 맛있는 먹을 쾌가 있다든가, 어디 좋은데 간다할 때만 살짝 얼굴을 내미는 얌체 구역원인데 이번에도 기꺼이 얌체가 되기로 하였다.
주일예배 끝나자마자 만나서 1시간반을 드라이브하여 도착한 곳은 ‘조개여울목’(Mussel Shoals)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바닷가 마을. 샌타바바라에서 10여마일 떨어진,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으로 개인주택 20여채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는 아담한 휴양지이다.
해변으로부터 피어로 길게 연결된 곳에 링컨(Rincon) 아일랜드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기 때문에 인적 끊긴 섬과 교각의 풍경이 오히려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곳에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을 사서 멋진 위켄드 홈을 지었다는 조현숙씨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는 특별한 식사를 대접한다고 바로 옆집으로 안내한 곳이 ‘클리프하우스 인’이었던 것이다.
객실이 24개밖에 안 되는 이 작은 호텔은 어디론지 멀리 떠나고 싶은 사람, 단둘이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로맨틱 커플들이 자주 이용하는 호텔로 꽤 널리 알려져 있다.
해변에 바로 면해있지만 일반에 오픈된 비치가 아니어서 오붓하게 바다 풍경을 실컷 즐길 수 있고, 바로 가까이 샌타바바라 관광지가 있어 고즈넉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는 탓이다.
우리는 이 호텔의 식당 패티오에서 즐겁게 식사하였다. 태양 빛이 작열하는 가운데 부서질 듯 맑은 공기,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파라솔 아래 흰 식탁에서 브런치를 먹는 즐거움은 분명 흔하게 찾아오는 순간은 아닐 것이다. 클리프하우스 인 레스토랑은 그동안 내 상상 속에 존재해온 것처럼 고급 식당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부담 없는 브런치를 즐길 수 있었다.
오더가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기 전 한 커플이 “구역장니임~” 애교있는 목소리로 부른다.
다들 쳐다봤더니, “우리 샴페인 좀 해도 될까요?” 묻는다.
브런치에는 샴페인을 곁들이는 미국식 식사 관습을 슬쩍 들이밀며 ‘용기있게’ 손을 든 것이다.
이럴 때 구역장은 어떻게 해야할까?
주일날 예배 끝나고 교인들이 모여 대낮에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겠다고 했을 때 말이다.
위기는 호스트인 조현숙씨가 웨이터를 불러 샴페인 두병을 주문하는 것으로 멋지게 넘어갔다. 브라보!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건강상의 이유로 잔을 받지 않은 몇 사람을 제외하곤 버블이 기분좋게 올라가는 샴페인 글래스를 부딪치며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샴페인을 마시면서 사람들이 수군댄다.
“구역장 눈치 볼 일이 아닌거 같애. 신문에 나면 어떡하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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