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계탕 체질

2005-08-20 (토)
크게 작게
지난해 여름에는 온 몸을 땀으로 멱을 감았었다.

어떻게 에어컨이 없이 선교회에서 8년이나 무더위를 이겨냈을까? 참 신기하기만 했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한 것인가? 언제부터 에어컨 바람에 신선노름을 했다고, 선교회에 에어컨이 올해부터 가동이 되면서부터, 시원한 바람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에어컨 없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난 유달리 더위를 잘 탄다. 몸이 적당히 통통 살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은 나를 뚱뚱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순전히 마른 사람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시하기로 했다) 남보다 체질적으로 열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은 지저분한 이야기이지만, 어릴 적 푸세식(푸는) 화장실에서 볼일에 열중할 때는 한 겨울에도… 땀이 삐질, 삐질 나오기도 했다. 여름에는 화장실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꼬물거리는 하얀 생명체들… 그리고 좁은 공간 안에 가득 차 있는 화끈한 온도가 나를 폭발시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나의 온몸은 그야말로 땀으로 샤워를 하고, 눈썹을 타고 눈 안으로까지 땀이 흘러 들어가곤 했다.
그런 옛날의 기억들이 에어컨이 없었던 지난해보다 지금이 더욱 많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체감 온도라는 것 말이다. 이렇게 사무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강의실에서 시원하게 있다가 오피스 바로 밑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설라치면, 헉헉하고 숨이 막혀오면서 그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오피스에서 사용하는 화장실은 에어컨이 없다. 반 지하를 파고 옆으로 약간 늘려서 좁고 길게 만들어 놓은 이 곳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붙어 있다. 물론 공기는 거의 통하지 않으며, 선교회 숙직 날 아침에 그 곳에서 볼일과 샤워를 하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도대체, 물로 샤워를 했는지, 아니면 땀으로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런 나를 보고 전도사님은 한마디로 삼계탕 체질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왜? 삼계탕처럼 홀딱 벗고, 뜨겁게 펄펄 끓는 더위에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닮아서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선교회에는 삼계탕 체질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비쩍 마른 김영일 목사님만 제외하고는 온통 선교회 아이들이 더워, 더워하며 헉헉거린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울려 퍼지는데도 말이다.
이런 녀석들이 만일 옛날에 푸세식 변소를 사용하던 그때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찌 했을까? 지금도 캘리포니아의 겨울에 반 팔을 입을 정도로 더위를 타는 나도 견디며 살았고, 오늘 아침도 그 찜통을 견디었는데…
저 녀석들은 도대체가 참지를 못하니, 아마도 수세식 화장실이 아이들을 참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다. 세상이 너무나 살기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저 녀석들이 불편한 것을 조금도 참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슬프다. 그래도 푸세식 때는 낭만이 있었는데, 신문지 조각을 빡빡 비벼서 부들부들하게 만들어 한쪽 손에 쥐고,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시원한 얼음 넣은 수박화채를 꿈꾸곤 했었는데… 녀석들은 보들보들하고 하얀 화장지에, 편안히 앉아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아무래도 복에 겨워도 한참 겨운 것 같다.
모든 것이 옛날보다 편안해지고,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의 가슴에도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의 편안함과 기다리지 못한 조급함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쌓여지는 분노가 미움과 폭력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 에어컨은 무지하게 좋지만, 그 옛날 푸세식이 그립다. 인간 내음이 그립고, 더워도 참을 수 있는 그 마음들이 그립다.
삼계탕 체질??? 녀석들과 내가 더위에 폭 빠져 견딜 수 없어 하는 그 체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삼계탕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