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센트 반 고흐 작품 ‘아이리스’

2005-08-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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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팝 싱어 단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Vincent)를 조용히 듣고 있자면 한 세기 전 살았던 고독한 화가에 대한 그의 진한 사랑이 절절이 느껴진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진실했죠. 빈센트! 당신이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난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온전한 정신을 찾으려 당신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한 일 없는 생면부지의 화가를 속내 나도록 사랑하는 대상처럼 노래하게 만들었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은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들 가슴에도 같은 강도의 감동을 일으킨다.


절망 껴안은 예술혼
‘자연을 친구처럼’

인류 문화의 보고를 안고 있는 게티 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그 가운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서관(West Wing) 2층은 하루 종일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 가운데 항상 수많은 관람객들이 고개를 길게 빼며 오래도록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림이 있다.
19세기 네덜란드 태생의 대표적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7-)의 작품, 아이리스(Iris)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32세 때인 1889년, 28x36 5/8인치 크기의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아이리스는 백 년 전, 세상과 섞이기 힘들었던 외로운 천재 화가의 영혼을 다시금 만나게 한다.
1987년 11월12일 소더비 경매에서 3억2,000만프랑(768억원)에 낙찰된 아이리스는 역대 미술품 경매순위 6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고흐의 다른 작품인 ‘닥터 가셰의 초상’은 미술품 경매 최고가의 레코드를 갖고 있다.
1889년 5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자해 행위 후, 몇 차례 정신병동을 드나들던 반 고흐는 아를르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생레미의 요양원에 입원한다. 죽기 전 마지막 해를 그곳에서 보내며 그는 무려 130여 점의 작품을 생산해냈다.
요양원에 도착해 첫 주가 지나갈 무렵, 조금씩 정신적 안정을 찾아가던 그는 정원에 피어있는 보라색 아이리스 꽃을 그리기 시작한다.
해바라기만큼 아이리스를 좋아한 반 고흐는 수많은 붓꽃을 그렸지만 게티 센터에 소장된 아이리스만큼의 대작도 없다. 조금은 과장된 구도, 강렬한 보색의 아이리스가 정원을 뒤덮고 있는 풍경은 아마도 당시 인기 있었던 일본풍 나무 판화의 장식적 패턴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짐작된다.
주의 깊게 꽃잎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관찰한 그는 부드러운 곡선의 실루엣을 바람결에 춤추는 꽃들의 향연에라도 초대된 듯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격렬한 감정을 담았지만 결코 정교하게 관찰한 꽃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진 않았다. 아이리스에 쏟아 부은 열정적 표현을 보며 우리는 고독이라는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그의 절망을 헤아리게 된다.
이 작품의 첫 주인은 프랑스 미술 평론가인 옥타브 미라보였다. 반 고흐의 초기 후원자 가운데 하나였던 미라보는 그가 얼마나 자연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늘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흐 자신은 이를 습작으로 여겼지만 그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동생 테오는 ‘아이리스’의 예술적 가치를 한 눈에 알아봤다. “형, 멀리서부터 눈을 멀게 하는 작품이야. 생명이 가득한 아름다운 그림이군.” 테오는 형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1989년 9월에 열렸던 인상파 화가들의 살롱(Salon des Ind pendants)에 아이리스를 출품하기도 했다.
세상을 가장 순전한 눈으로 바라보고 깊게 느끼며 그 감동과 열정을 캔버스에 표현해나간 빈센트는 끝내 머리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김으로 고독한 삶을 마감한다. 37세의 짧은 생애였다. 그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어지기를.
게티 센터 주소 1200 Getty Center Dr. Los Angeles, CA 90049.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차비는 7달러.
문의 (310)440-7300.
웹사이트 www.getty.edu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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