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을 위하여, 희망을 위하여… 촛불을 켜라

2004-12-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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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아름다운 매개체다. 많은 만남이 있었던 혜화동의 시꺼먼 카페, 촛불잔치 때문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미미가 꺼진 촛불을 들고 루돌포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던들 그들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 ‘라보엠’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앙초도 문화… 직접 만들어 장식하면 ‘아름다운 추억거리’

영화 ‘영국인 환자’에서 폭발물 발굴 전문가 킵이 자신의 침실로 간호사 해나를 초대하는 길, 걸음걸음마다 달팽이 껍질에 기름을 넣어 밝힌 촛불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의 마음이 그를 향해 그렇게 활짝 열릴 수는 없었을 터이다.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게 된 남자들은 촛불이 테이블을 밝힌 레스토랑에서의 로맨틱한 디너로 그녀와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한다.
사랑을 만들어 가는 밤도 춤을 추는 양초의 불꽃은 새롭게 탄생한 연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촛불은 파리의 노트르담과 탕보체의 곰파(절) 안을 공평히 밝혀주며 우리 안의 신성을 비춰주기도 한다.
길 떠난 지아비와 서울 간 큰아들을 위해 정한수 떠놓고 기원하던 우리의 어머니들도 예의 촛불을 밝혔었다. 반전시위 때도 민주화 평화 대행진 때도 우리는 촛불을 밝혀 거룩한 분노를 시위했다.
생일 케이크 위에서도, 결혼식의 청홍 촛대 위에서도, 그리고 세상 떠난 고인의 영정 앞에서도 촛불은 말없이 자신의 몸을 태워가며 영롱한 빛을 발할 뿐이다. 전기가 나가지 않더라도 평소 촛불을 켤 일이다. 가만히 타오르는 그 불빛은 바라보기만 해도 심리적 상처들을 치유한다.
한 해의 감사함을 되새기며 선물을 주고받는 계절, 자신이 손수 만든 양초를 선물한다면 받는 이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촛불을 함께 만들었던 기억들도 자녀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윤미선(40, 주부)씨는 지난 주말 아들 제임스 윤(8)군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사실 그냥 마켓에 가면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것이 양초지만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보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왁스와 염료, 틀을 구입해 아들과 함께 직접 양초를 만든 것이다.
보라색 효과를 내기 위해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염료를 구입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멋모르고 들어온 하얀 털의 강아지가 이를 물어뜯는 통에 강아지 털이 파랗게 채색이 돼 한참을 웃어제치기도 했다.
고형의 왁스가 물처럼 녹으면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염료를 섞는다. 모양을 내는 틀에 심지를 넣고 위를 고정시킨 후 녹인 왁스를 부어 식히면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색채의 양초가 완성된다.
처음 단색의 양초가 성공하자 이번에는 멋을 좀 부려본다. 지난여름 무슨 바람이 불어선지 남편이 사들고 온 장미 꽃다발을 그대로 말렸던 것에서 꽃잎을 떼어내 군데군데 넣었더니 자연을 들여놓은 아주 근사한 웰빙 양초가 만들어졌다.
진주 구슬핀과 꽃들을 붙여 만든 장식 양초는 완성품이 화려하며 예쁘다. 양초를 만들 때 향료를 조금 넣었더니 이번에는 아주 좋은 향기가 나는 방향 제품이 된다.
양초를 다 만들고 난 그녀는 아들과 함께 촛불을 밝힌다. 촛불은 이제 늘어가는 얼굴의 주름도, 조금은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아들의 장난감도 모두 보듬으며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을 비춰준다.
촛불이 영롱하게 밝혀진 공간엔 아름다운 향기가 있고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형광등을 끄고 촛불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행위인지 그녀는 새삼 다시 깨닫는다.
오늘 밤, 제임스를 재우고 나면 촛대에 촛불을 하나 밝혀 남편이 누워있는 침실로 가져갈 생각으로 그녀의 얼굴엔 수줍은 새색시의 미소가 번진다.



양초 만들기 웍샵

이번 주말인 12월 11일(토) 오후 1-4시까지 UCLA 문화사 파울러 뮤지엄(UCLA Fowler Museum of Cultural History)에서는 온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양초 만들기 예술의 세계 웍샵(A World of Art Family Workshop: Candle Making)’행사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Bot nica Los Angeles: Latino Popular Religious Art in the City of Angels’라는 전시와 함께 마련되는 이벤트다.
전시 작품 가운데 하나인 소냐 카스트룸의 ‘오천, 미카엘라, 이라크를 위한 제단(Altars for Ochun/Michaela/Irak)’은 원시적 종교성에의 귀의와 구원에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작품.
UCLA Fowler Museum of Cultural History. 주소, 405 Hilgard Ave. UCLA 내. 전화, (310)825-8655.
참가비: 비회원은 재료비 포함 5달러, 회원들은 무료. 웍샵을 통해 참가자들은 평범한 원통형의 양초를 리번과 라피아, 스티커, 그림 등으로 장식하는 선물용 양초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양초 직접 만들어 보기

■필요한 재료
파라핀(왁스), 파라핀을 녹일 중탕냄비, 염료, 향료, 스테인리스로 된 틀 또는 양초의 틀로 적합한 컨테이너들(도자기, 컵 등도 좋다. 가까운 Wal-mart에 가면 양초 만드는 적합한 틀을 47센트에서 2달러 정도의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미리 왁스를 먹이고 아래 고정 탭이 달린 심지, 심지를 고정시키는데 필요한 Big Pen 볼펜 깍지, 온도계, 나무젓가락, 글루 등.
■왁스 녹이는 것은 가장 위험성이 많이 내포돼 있는 과정. 어린이와 함께 만들 때 특히 주의가 요망된다.
양초 제작에 들어가기 전, 소화전을 비치하고 사용법을 숙지한다. 왁스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그때 가서 사용법을 펴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왁스로 인한 화재에 물을 끼얹으면 절대 안 된다. 왁스가 녹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절대 눈을 떼서도 안 된다. 고형에서 일단 액체 상태가 되고 나면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온도가 상승되기 때문이다. 계속 온도계를 확인, 녹인 왁스가 화씨 250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
■잘 사용하지 않는 냄비에 물을 넣어 끓이다가 화씨 212도가 되면 불을 약간 줄이고 왁스를 담은 컨테이너를 넣어 왁스에 직접 불이 닿지 않도록 중탕으로 녹인다. 중탕 용 물은 줄지 않도록 계속 부어준다.
■양초의 지름에 맞는 심지를 골라 볼펜 깍지에 넣어 알루미늄 꼭지에 글루를 발라 틀의 밑바닥에 고정시킨다.
그대로 볼펜 깍지에 낀 심지를 틀의 맨 위까지 끌어올린다. 왁스가 완전히 녹으면 염료나 향료 등을 원하는 대로 더한다.
■녹인 왁스를 틀에 조심스럽게 붓는다. 틀에 넣어 굳히는 기둥 양초는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형태다. 철판,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플래스틱, 라텍스 등 다양한 재질의 틀은 정방형, 원통형, 별 모양 등 여러 형태와 크기가 있다.
나중에 왁스가 잘 떨어지도록 틀의 표면에 실리콘 스프레이나 쿠킹 스프레이를 가볍게 발라준다. 심지가 가능하면 직선이 되도록 조정해 나무젓가락 가운데에 끼워 컨테이너 위에 올려놓는다. 이는 왁스가 굳는 동안 심지를 중심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Candletech.com에 가면 양초 공예에 관한 많은 정보를 참고할 수 있다. 초보자로부터 전문가가 만든 10만여개 양초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어 디자인을 참고할 만하다.

<글·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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