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임신 9개월이 된 이유

2004-12-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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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날 때면 호빵처럼 부풀어오른 몸뚱이가 유난히 거추장스럽다. 그래도 어렸을 땐 다들 부러워하는 V자 몸매와 배용준 같은 얼짱이었는데(믿든 말든 알 수 없겠지!). 요즈음 나름대로는 쬐끔 빠졌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내 배를 가지고, 임신 9개월 같다며 언제 애가 나오느냐는 둥, 영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솔직히 나는 내 배를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내 배 나오는데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왜 그리 내 배에 관심이 많을까? 그러나 거울에 비춰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점점 쳐져 가는 가슴살들과 맹꽁이 배 모양으로 앞으로 나오다가 감당이 되질 않아, 마지막 칸에 간신히 졸라맨 혁대 옆으로 제대로 삐어져 나오는 살들이 영 눈에 거슬린다. 발끝을 모으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내밀어 아래를 쳐다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커다랗고 둥근 배에 가려져 발끝이 보이질 않는다. 왜, 자꾸 배가 나오는 걸까? 배가 나와서 제일 불편한 건 아침에 벌떡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이 L자로 구겨지질 않는다. 먼저 옆으로 돌아눕는다. 배가 한쪽으로 우르르 쏠린다. 한 손으로 배를 약간 들어올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곤 한다.
뿐인가, 양말 신을 때가 가장 고역스럽다. 앉아서 다리를 약간 들고, 발끝에 힘을 주어 양말 구멍을 조준하여 멀리서부터 발을 밀어 넣는다. 간혹 길 가다가 구두끈이 풀어질 때는 정말 난감하다. 다이어트가 필요한데, 운동을 해야 하는데…
선교회는 이른 아침이면 모두들 그리피스 팍으로 하이킹을 간다. 물론 준비과정은 스태프나 형제자매들이 고통의 연속이다. 단 1분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 속으로 움츠리고, 기어 들어가는 아이들을 이불을 들추고, 소리를 지르고, 흔들어 깨우며 매일 전쟁을 치른다. 난 얼마 전부터 꾀가 나서 이불 속에서 가만히 아이들이 떠날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너무 싫어서이다. 어쩌다 아이들이 “왜 목사님은 요즈음 하이킹 안가요?”라고 불평하면, “너희들 불만이야? 그래? 너희들 하이킹 가기 싫어? 억울하면 너희들도 목사돼. 그러면 되잖아”라고 약을 잔뜩 올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처구니없다며 투덜거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어떻게 목사님이 저러냐고. 김 목사님은 하이킹 아니라 마라톤까지도 가시는데. 한 목사님은 아이들보다도 더 뺀질이라고…
사실은 내가 정말 하이킹을 가기 싫은 이유는 냄새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잠도 덜 깬 채로 아이들은 밴을 탄다. 반쯤 눈이 감겨 있는 사이로 눈곱이 달려 있다. 이빨도 안 닦았다. 꼭 한두 녀석은 염치도 없이 그 좁은 차안에서 방귀를 큰 소리로 껴댄다. 그래도 소리나는 방귀는 그런 대로 견딜만한데, 소리 없이 뀌어대는 임자 없는 방귀의 냄새는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트림도 한다. 침을 흘렸는지, 얼굴 한쪽에 허옇게 자국이 남아 있다. 밤새 땀을 흘리며 잤던 옷 그대로이다. 꼬릿꼬릿한 냄새가 죽인다. 방독면을 하지 않으면, 호흡장애를 가져올 것만 같다. 바로 그 이유가 나에게 하이킹을 거부하게 만든 것이다. 녀석들의 그 지독한 냄새가 내 배를 더욱 더 나오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굳이 이유 한 가지를 더 말하라면, 여자아이들, 몇몇 아이들은 절반 정도의 눈썹이라도 있는데 대부분은 낮에 있는 눈썹이 없다. 눈도 낮보다 절반이나 작다. 머리는 부스스해서 한쪽으로 밀려 있어서 가마(?)라고 하는 허연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집사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자들이 거의 그렇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환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씻어야 하고, 닦아야 하고, 가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이틀만 지나도 이렇게 구질구질해지지 않는가? 몸도 그런데, 마음은 오죽할까? 몸도 마음도 매일매일 누가 보든 안보든 깨끗이 가꾸는 녀석들이 되어주렴. 그래야 내가 뱃살을 뺄 수 있지 않겠니! 하긴, 남들 이야기하기 전에 나부터 다이어트로 가꾸는 연습을 해야겠지? 몸도, 마음도, 영혼도 아름답게…

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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