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사는 이야기 꿈

2004-11-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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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 아니다. 게다가 분명히 무슨 꿈을 꾸긴 꾼 것 같은데 눈을 뜬 직후부터 꿈의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억에 또렷이 남는 꿈은 1년에 고작 서너번 정도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또렷이 기억에 남는 꿈들은 신기하게도 실제 상황과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나는 꿈 때문에 며칠 전에 예견할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나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서 있었고, 시커먼 증기 기관차가 칙칙폭폭 연기를 뿜으며 들어왔다. 기차에는 아버지가 타고 계셨는데, 내가 기억하는 젊은 모습의 아버지였고, 나 또한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모습의 유치원 다닐 정도의 어린 나이였다. 기차가 정차하자 아버지는 손을 뻗어서 할아버지를 기차로 태웠고, 내가 따라서 타려고 하자 나를 밀쳐내며 “너는 오지마”라고 무섭게 말씀하셨다. 거기 서서 나도 기차 타고 가겠다며 서럽게 울다가 깬 것이 바로 그 꿈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아버지가 나를 홀로 두고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것이 그렇게 서럽고 아쉬울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눈가에 눈물이 번져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꿈 얘기를 하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꾼 지 얼마 안돼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LA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꿈에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서 훌쩍 뛰며 내 왼팔을 물었다. 아프다는 느낌보다 분노가 앞선 나는 고양이를 오른손으로 잡아서 바닥에 세게 던져 죽여버리고 말았다. 검은 고양이가 나온 꿈은 흉몽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꿈에서 깨어나서도 매우 찝찝했었는데, 아침 일찍 편지를 부치러 우체통에 걸어갔을 때 갑자기 내 눈앞에서 어마어마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 두대의 차량 중 한대가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서 내 앞으로 밀려오더니 약 50미터 앞에서 연기를 내며 멈추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 차가 한두바퀴만 더 돌았더라도 확실하게 나를 덮쳤을 것이다.
그걸로 꿈이 예견한 일이 끝난줄 알았는데, 난생 처음으로 그 날 저녁에 자동차를 도난당했다. 멀쩡하게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가 다음 날 아침 내려가보니 온데간데 없었다. 꿈에 나타난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에도 가끔 하는데, 아마도 더 큰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버지니아주에 사는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엄마와 올케와 동생 꿈에 내가 번갈아 나타나서 어디론가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내게 전화를 하기 전날 밤 엄마의 꿈에는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밤새 찾았다고 하셨다. 빠이빠이를 하며 집을 나선다니, 그다지 좋은 꿈 같지 않았다. 게다가 각기 다른 세사람의 꿈에 번갈아 나타났다니 이는 필경 뭔가 좋지 않은 일을 예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매일매일 뭔가 찝찝한 기분을 달고 지낸다. 별 일 없겠지 싶으면서도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고, 그래서 어지간한 일이나 약속은 자제하고 있다. 우리 엄마의 꿈도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큰 콩쿨에 나갈 때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는 엄마의 꿈이 콩쿨과 시험의 결과를 항상 어느 정도 예측했었고, 내가 예원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같은 초등학교에서 예원으로 진학한 아이들 중 나와 한 반이 된 8명의 아이들이 모두 엄마의 꿈속에 보였다는 얘길 들었다.
며칠 전에 평균 한달에 한번 정도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이 내 꿈속에 나타났다. 그 사람이 땅에 뚝뚝 떨어질 정도로 많은 양의 똥을 한 바가지 퍼서 가지고 나가는 꿈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마치 그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사람은 침착한 목소리로, “아, 그래요? 로또나 한 번 사봐야겠네” 했다. 그리고 어제 전화가 왔다. 내 꿈 얘기를 듣고 로또를 샀는데 당첨이 됐다는 것이다. 무려 상금 104달러! 내가 아는 주변인 중 가장 큰 액수의 당첨금인 것 같다.
꿈을 꿔준 내게 상금으로 밥 한 끼 사겠다니, 어쩌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왕 꾸는 꿈, 다음에는 바가지가 아니라 트럭으로 퍼다 나르는 꿈을 꾸면 좋겠다.

새라 최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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