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갈 곳 없는 추수감사절

2004-11-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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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명절 때가 가까워 오면 분주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선교회 안은 썰렁함이 찾아든다. 명절이라 자주 찾지 않았던 이들이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손길도 이어지지만, 그 한 때가 지나고 찾아올 적막함이 두렵기 때문인지, 가슴 한쪽이 왠지 텅 비어 시려오는 아픔의 이유는 왜일까?
해마다 찾아오는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물론 부모가 있고 가정이 있는 이들에게는 떨어져 있는 가족끼리의 만남이 지극히 당연시되고 있어서, 의무적이든 아니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잠재적 압박감이 드리워져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역시 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끈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이 그립고, 크리스마스가 작은 흥분을 가져오기도 한다.
현재 선교회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의 명단을 대충 쭉 훑어보았다. 명단의 한 절반 정도 부모는 선교회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만나기 위해 가끔 들리는 분들이셨다. 경우에 따라서, 너무나 지나치게 관심이 많아 귀찮을 정도로 들여다보는 분들도 있지만, 자녀들을 맡기고 거의 돌보지 않는 경우도 의외로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은 아무 연고자가 없는 형제, 자매들이다. 혹은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기도 하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을뿐더러 행여 선교회에서 연락이 올까봐 전화번호를 바꾸고 집을 이사한 경우도 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하겠는가’ 이해도 되지만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추수감사절은 형제들과 부모님들이 온갖 솜씨를 뽐내며, 선교회에서 터어키, 햄을 굽고, 고구마도 적당히 삶아 한 상을 차린다. 우리는 그저 냠냠 쩝쩝하며 맛있게 먹어주고, 예배와 친교의 시간을 갖곤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모처럼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가족모임을 빙자해 부모님이나, 아이들이나, 어떻게 해서든 한번 선교회 문밖에 나가보려고 애타게 허가증을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갈등 속에 애처로운 부모님의 눈빛에 못 이겨 허가증을 내주고, 선교회형제들의 한 반 정도가 쭈루룩 나가고 나면, 남아있는 형제, 자매들의 눈빛은 슬픔이 차 오른다. 침묵이 흐른다. 갑자기 떠들썩하고, 흔들거리던 선교회 전체의 분위기가 암흑과 같이 짙은 무거움으로 주저앉는다. 방금 전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던 분위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엄마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형제, 입양되어 갖은 구박과 인종차별로 어릴 적 집을 뛰쳐나온 형제, 하늘 아래 피붙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형제,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형제, 부모가 전화조차도 받아주질 않는 형제 등등…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지만, 모두 다 외로움에 지쳐서 정 한쪽, 사랑 반 스푼만 있어도 얼른 집어삼키고 싶어하는 이들이다. 이런 사무친 사연이 가득한 형제들이 명절날이면, 더더욱 힘들어하고, 우울해지는 그런 날이다. 어떤 형제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잠을 청한다. 어떤 형제는 멍하니 선교회 앞마당에서 밖으로 지나는 차들만 바라보고 있다.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또 다른 형제는 조금 전 실컷 먹어 더 이상 음식 냄새도 맡기 싫다더니, 다시 한 상을 차려놓고 꾸역꾸역 입으로 자꾸만 무엇인가를 구겨 넣는다. 몇몇 형제들은 큐티룸에서 머리를 파묻고, 자는지, 생각하는지 고개를 들지 않는다. 이런 형제들을 바라보노라면, 너무나 마음이, 마음이 쓰려온다. 적막한 선교회의 분위기를 한껏 바꿔보려고 큰 소리로 형제들에게 “야, 우리 영화나 빌려볼까?”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다른 날과는 달리 냉냉하다. 그렇게 해마다 추수감사절은 잃어버린 말과 웃음이 그리운 날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알겠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 한 가족이 없다 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내가 너희들의 가족이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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