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4-11-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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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두 애’

지난 주말 동생네 집들이가 있었다. 사실은 8월에 이사갔는데 뭐가 그리들 바쁜지, 세자매 가족이 한데 모이기가 좀체 어려워 이제서야 찾아 보게된 것이다.
나의 동생 진희는 나보다 두 살 아래, 우리 일곱형제중 막내인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 둘을 한 묶음으로 일컬어 ‘끝으로 두 애’라고 하셨다.
‘끝으로 두 애’라는 말속에는 알게 모르게 ‘애처롭다’는 뜻이 담겨있었으니, 우리는 늦게 태어나 부모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언제나 오빠 언니들 틈에서 밀리곤 했으며, 항상 바쁘셨던 엄마가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해 식모들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점쟁이가 ‘끝으로 난 두 자식이 재주도 많고 효도할 것’이라 했다는데, 그것은 전혀 맞지 않는 점괘였다. 우린 둘다 큰 재주도 없고, 효도라고 해보기도 전에 부모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진희는 엄마가 마흔 둘에 낳으신 늦둥이였으며, 임신중독으로 사경을 헤매시다가 한달 먼저 조산한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는데 때가 1960년이니 인큐베이터가 뭔지 아무도 모르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너무도 신기해하였다. 우리가 자라면서 친척이나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수없이 듣던 이야기가 “아니, 얘가 그 항아리 속에 들어있던 아이야?”하는 말이었다.
어릴 때 병치레가 많아서 골골했던 동생은 그러나 자라면서 놀랄 만큼 건강해졌다. 한창 시절에는 자신의 지나친 건강에 대해 유감스러워할 정도였고, 나이 들어서는 남보다 많이 먹으니 당연히 남보다 살도 많이 찐 자신의 몸매에 대하여 유감스러워하였다.
우리가 대학시절, 오빠 언니들이 다 결혼하여 나가고 난 후에야 진희와 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평소 구두쇠였던 어머니는 그제서야 마음이 좀 가벼워지셨는지 끝으로 둘만 남은 우리에게 용돈도 넉넉히 주시고, 옷이며 구두도 잘 사주셨으며, 셋이서 가끔 외식도 즐겼고, 우리는 식구가 팍 줄어 한가한 집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었다.
미국에는 내가 먼저 왔고 결혼은 동생이 먼저 하였지만, 우리는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하여 한달 간격으로 같은 의사에게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그리고는 둘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아들들은 사촌이라기보다 형제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로서 함께 나란히 자랐다.
두 아이는 생일이 한달 차이밖에 안 되지만 12월 생인 동생 아들이 1월에 태어난 우리 아들보다 한 해 먼저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학년이 달라졌다. 그동안 줄곧 우리집 가까이 살던 동생네가 지난 여름방학 때 패사디나로 이사간 이유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위해 학군을 옮긴 것이었다. 나도 내년 이맘때면 같은 운명에 처하게되는 것이, 이곳 LA에서는 갈만한 고등학교가 변변치 않은 것이 많은 부모들의 고민인 것이다.
진희와 나는 이제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언니들 보기에는 애처로운 ‘끝으로 두 애’인 모양이다. 미국에 와서 꽤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남들만큼 멋지게 자리잡고 떵떵거리며 살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운가 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진희에 대해 갖는 마음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언니가 되가지고, 가까이 살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언니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속으로 늘 자책감을 느껴온 것을 진희는 모를 것이다. 그애는 동생이 없으니, 언니들의 동생에 대한 괜시리 애틋한 감정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번에 진희네가 이사간 집은 그동안 살았던 집들 중에 가장 번듯하고 넓어서 마음이 좋았다. 소원하던 넓은 부엌을 갖게 되었고 화장실도 아래위층으로 2개가 있었다.
집들이에서 동생은 샤부샤부와 해물전, 그리고 해파리냉채를 차렸다. 해파리냉채를 보자마자 언니의 두 딸이 합창을 한다. “이게 바로 ‘풀하우스’에서 ‘비’가 송혜교더러 만들어내라던 그 음식이야?”
미국서 태어났지만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조카들처럼 동생의 아들과 나의 아들도 똑같은 코리안 아메리칸 문화속에서, 똑같은 이중문화를 공유하며 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일꾼들이 되기를 소원하여 본다. ‘끝으로 두 애’와 ‘그들의 두 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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