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사는 이야기

2004-11-13 (토)
크게 작게
내가 먼저 가거들랑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상처한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1년도 채 안됐는데 재혼이라고? 너무했다 너무했어. 그러기에 남자는 믿을 수가 없대잖아.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뭐. 그러니까 여자는 모름지기 악착같이 오래 살아야 하는 거야.”
상처한 남자가 1년 안에 재혼을 했다면 여인들의 이런 입방아 찧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상처한지 6개월이 못 되어 좋은 혼처가 생겼는데도 남의 이목이 무서워 미루다가 그 좋은 자리를 놓치고는 3년이 넘도록 아직도 재혼을 못하고 계신다.
여인들이 자기들 입장에서만 남자를 이해하다 보면 이런 투정이 절로 나오게 마련이다.
“아니, 혼자서 왜 못 사는 거야. 평생토록 혼자 사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으며, 신부님이나 스님들도 얼마든지 혼자 잘 지내는데 그깟 1년을 못 참고 저 야단이야?”
하지만 이런 비난은 남자들의 생리를 전혀 이해 못하는 여인들의 무지에서 비롯될 뿐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남자들은 하루라도 여인 없이는 살기 힘들어한다.
신부님이나 스님들이야 아예 결혼 경험이 없으니까 그나마 견디기 쉬울지 몰라도 결혼생활을 했던 남자들에게는 혼자 지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만에 하나 예외가 있긴 하겠지만. 글쎄-
모두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재혼관은 이렇다.
남자든 여자든 짝을 잃은 후 곧바로 마땅한 좋은 재혼자리가 생긴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괜히 미적거릴 필요 없이 일을 성사시키는 게 좋다고 본다. 부부 사이가 다정했던 사람은 그 빈 공간이 너무 크게 느껴져 혼자 지내기가 더 힘들 거고, 부부 사이가 서먹했던 사람은 새롭게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짝을 찾아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거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빨리 재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없는 사람을 연연해하며 쓸쓸히 지내는 건 보기에 몹시 딱할 것 같다.
남자와 여자를 비교해 보면 짝을 잃었을 경우에 여자들은 그래도 혼자 곧잘 지내는데 남자들은 아주 힘들어하는 걸 발견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물주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는 남자 혼자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그를 도울 배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우리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도우며 살았던 사람은 도울 대상이 없어져도 혼자 잘 살 수 있지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은 자기를 도와주던 사람이 없어지면 힘들건 뻔하다.
그래서 남자들이 혼자 남게 될 때 더 힘들어하고 될 수 있는 한 재혼도 빨리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죽은 부인과 사이가 좋고 나쁘고 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생활이 불편하고 외롭기 때문일 거다.
내가 특별히 이해심이 많은 여인이 아닌데도 이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나는 남편에게 유언(?)처럼 이런 얘기를 미리 해놓는다.
“여보, 혹시 내가 먼저 가거들랑 나한데 절대 미안한 맘 갖지 마시고 가능한 한 빨리 재혼해서 여생을 행복하게 사세요. 나는 천국에서 당신보다 엄청 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테니까요.”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사랑하는 남편이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진 후 혼자서 외로움을 곱씹으며 혼자 지내기를 원치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나같이(?) 좋은 여인을 만나 여생을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는 미리 얘기해 놓는다. 내가 먼저 간 후 남편이 한 달이 못되어 재혼하더라도 절대 비난하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유언을 해두었노라고.
나로서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듣기 싫은 모양이다. 이런 말을 하면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내가 먼저 가는 것도 원치 않고, 당신이 먼저 가는 것은 더더욱 싫고, 우리 둘이 해로하다가 같이 천국에 갔으면 좋겠어요.”
다시 밝아지는 남편의 표정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부부가 주의 일 열심히 하면서 건강하게 해로하다가 ‘같이’ 주님 품에 안기게 해 주세요.”

신은실<사모>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