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빛날 사람 키우는 게 내몫 ”

2004-11-06 (토)
크게 작게
가든 크리스천 휄로십교회
담임 데이빗 김목사 어머니
정명소씨

지난여름 반가운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인2세들의 크리스천공동체 ‘가든크리스천휄로십교회’ 담임 데이빗 김 목사의 어머니로 본보 종교면에 소개된 정명소씨(63).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의 큰누나이며 남가주 올드타이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플루티스트다. 그리고 얼마 후, 팔순노모를 위한 콘서트 ‘정트리오, 10년만의 해후’를 연 정명훈씨는 인터뷰를 통해 “큰누나(정명소)가 기도를 해주면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일은 꼭 이루어진다”고 믿음을 보였다.


건강때문에 플루티스트 길 포기, 하나님 만나 변화


90년까지 베데스다 신학교에서 강의하다가 홀연 자취를 감춘 지 14년만에 ‘김목사의 어머니’로 살짝 존재를 드러낸 정명소씨를 따뜻한 가을 햇살이 스며드는 환한 공간에서 만났다.
피아노 앞에 앉아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정씨에게 근황을 물으니 “교회음악 활동하느라 못했던 아내노릇, 엄마노릇에 충실하고 학생들 플룻 레슨을 하며 지낸다”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CD를 보여주며 내 제자들이라고 소개하는 연주자들은 앤드류 배, 애쉴리 장, 대니엘 은 등 음악계가 주목하는 영 아티스트들이다.
“음악하는 사람은 원래 하나 밖에 모른다”는 말로 자신을 압축 표현하는 정씨에게는 메릴 린치 한국지사장을 지낸 남편 김계범(68)씨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잔 김씨는 아버지를 따라 예일대를 졸업하고 월트디즈니 마케팅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작은아들 데이빗 김씨는 앞서 말한 대로 한인2세 독립교회로는 드물게 자체건물을 마련했을 만큼 부흥한 교회를 이끌고있는 목회자다.
“인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한 건 음악인으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나 봅니다.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하나님은 한없이 이기적이기만 했던 내 자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죠. 나를 빛내는 일보다 빛나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 내 몫임을 알게 된 겁니다”
플룻을 전공한 정명소씨는 1959년 열 일곱의 나이로 뉴욕 줄리아드 음대에 유학 왔다.
지금도 가끔씩 동생들과 맨해튼의 좁은 아파트에서 하루종일 연습하다 뉴욕의 야경에 취해 밤새도록 음악과 인생을 논하던 시절이 그립다는 정씨는 졸업을 앞두고 건강상의 이유로 플루티스트의 길을 포기했다.
열정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인생의 고비였다. 어쩔 도리 없이 플룻을 그만두고 요양하는 동안 동생들은 세계적인 음악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정씨는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절망의 늪에 빠져드는 순간 하나님을 만났고, 성경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정씨는 말한다.
예일대 대학원을 거쳐 워싱턴주립대에서 합창과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씨는 1976년 남편이 메릴 린치 한국지사장으로 파견되면서 경희대, 한양대, 이화여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 매진했고, 1980년 LA에 정착한 이후 베데스다 신학교 교수를 역임 했다.
이 시기 정씨는 제자들에게 음악만 가르치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도를 걸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다.
음악으로 사랑을 표현하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온전한 인간이 온전한 음악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도, 음악도, 사랑도 모두 믿음 속에 존재하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삶,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단호한 삶이 행복한 삶이에요”
“벌써 내 나이 예순 셋이 됐다”며 수줍게 웃는 정명소씨를 보면서 앞으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또 어떤 버팀목의 역할로 사람들 앞에 나타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하은선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