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4-10-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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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교육

LA에서 동쪽으로 두시간 정도 가면 팜 스프링스 인근에 아이딜와일드라는 명문 예술학교가 있다. 한국에서 유학 오는 중고생들이 유난히 많은 그 학교는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그곳서 교사로 일했던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학교측에서 한국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이따금 ‘청소 세미나’를 연다고 한다.
이유는 한국 애들은 자기 방을 치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도저히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스포일 되어 있어서 할 수 없이 모아놓고 방 치우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타인종 학생들이 한국 애들과는 룸메이트를 안 하려고 다들 피하기 때문에 생긴, 학과외 특별 프로그램이란다.
한국의 정상급 스타들이 총출연했던 할리웃 보울 음악 대축제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뒤에서 일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10대, 20대 젊은 가수들의 태도와 매너가 지나치게 수준 이하여서 함께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금연 구역인 복도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것은 보통이고, 호텔 방에서 실컷 음식과 술을 시켜먹고는 나몰라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심지어 무대 뒤에서 자기에게 배당된 분장실이 다른 가수의 방보다 적으면 문을 발로 걷어차며 성질을 부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달래고 규칙을 설명해도 말을 듣는 ‘애들’이 없기 때문에 다들 한 대씩 때려주고 싶다고 한탄한 한 관계자는 팬들은 스타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야단이지만 실제로는 가까이 할수록 기분만 나빠진다고 덧붙였다.
우리 아들이 다니는 보이스카웃에서도 몇몇 말 안 듣는 애들 때문에 가끔 부모들이 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캠핑을 한번 따라 가보면 애들을 훤히 알 수 있는데 말 안 듣고 뺀질거리는 애들은 주로 한국 애들이며 언제나 요리조리 피하고 맡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애들을 보면 대개 부모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인의 가정에서 가정교육이 사라져가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의는 고사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곤란한 기피대상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삶의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채 사회에 내던져지는 아이들은 누구 책임일까?
요즘 부모들은 도무지 자녀를 가르치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는다. 집안에는 어른이 없고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으며 사회에는 지도자가 없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집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자주 야단치고 벌을 주었다. 부모가 아니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고, 형제도 많아 형, 오빠, 누나한테 야단맞고 크면서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배우고 자랐다. 집밖에 나가서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동네 어른들, 이웃집 할아버지가 야단치고 훈계를 하였다.
모두 먹고살기 바빴던 그 시절엔 부모더러 아이들과 놀아주라, 대화하라, 좋은 아버지가 되어라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전혀 없었고 아이들은 야단만 맞고서도 잘만 자랐다. 얼마나 애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5월5일을 어린이날이라 정하여 그날 하루만이라도 아이들 맘껏 놀게 했을까.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일년 365일이 어린이날이라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라면 벌벌 떨고, 하나둘 낳은 귀한 아이들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지 못해 안달이며,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 책자, 세미나가 수없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렇게 금지옥엽 키우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빗나가고 탈선하는 비율은 옛날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우리가 알거니와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 무조건 너그러운 것, 무조건 예뻐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안 주기도 해야하고, 못 하게도 해야하고, 하기 싫은 일을 시키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다. 풍족한 삶, 너그러운 사랑 속에서 키운 당신과 나의 자녀가 혹시 위의 아이들 같은 모습은 아닐까? 무조건 야단을 치자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훈계조의 글을 쓰고 나면 뒤통수가 좀 따갑다.
어디선가 “너나 잘해!”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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