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꾸물거리며 미루는 병

2004-10-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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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으로 꾸물거리며 해야할 일을 미루는 것도 병이다. “나 지금 그 일을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 한쪽에서 빙빙 돌지만 몸은 안 움직여진다. 그리고 괜히 인터넷에 들어가 정크메일 가득한 자신의 메일 박스만 체크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단지 시간관리나 게으름의 문제뿐 아니라, 무엇인가 마비된 것 같은 느낌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이곳 저곳을 클릭하면서 지금 책을 파며 공부해야하거나 맡아 놓은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지긋하게 자리에 앉아 일을 끝내버리지 못할까? 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하는데, 첫째는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일이 딱 코앞에 닥쳐 시간적 압박을 받아야 더 생산성 있게 일을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일 해야지”하는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으며, 부랴부랴 끝마친 일의 질은 대개 떨어진다.
꾸물거리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맡겨진 일에 대한 실력과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시간을 넉넉히 갖고 끝낸 일이 부족해 보이기보다는 마지막 순간에 한일이기 때문에 질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서, 능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보여지길 원하는 심리적 방어로 미루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심리불안한 완벽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내가 이 모든 일을 멋지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거나 인정받을 수 없어 라는 생각으로 안달하며 일을 꾸물거리며 미룬다.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또 충동적이어서 자기통제력이 대체로 약하다. 학기 말 페이퍼를 쓰다가 잠깐 스낵 거리를 찾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우유가 엎질러진 것을 보자 급기야는 냉장고 전체를 청소하게 되는 충동성이 일을 꾸물거리게 하는 것이다.
한편, 권위적인 부모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주 비판을 받는 아이들도 꾸물거리는 경향이 있다. 꾸물거림으로서 비판을 회피하기도하며 동시에 부모에게 무언적 반항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에서 “해야만 하는데” 하는 목소리와 “하기 싫어”하는 목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행동의 마비상태를 경험한다. 심리학자들은 그러한 소리 사이에 갇혀있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이 목표를 선택했음을 재인식하는 것은 “해야만”이라는 강한 압박감에서 “하기 원함“이라는 자발적인 동기 부여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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