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Monsier Ibrahim ****1/2

2003-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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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마 샤리프가 스크린에 돌아와 자비롭고 인자한 연기를 보여주는 삶의 예지로 가득 찬 감정적인 작품이다. 나이와 믿음 그리고 피부 색깔이 다른 어른과 소년의 믿기 어려운 우정과 부자지간 같은 사랑을 그린 따스한 영화로 유머와 눈물 그리고 추억이 가슴을 적시고 들어온다.
소년의 성장기이자 소년과 이 소년을 아들처럼 거두어들인 어른의 로드무비이기도 한데 궁극적으로 관용과 수용과 희망에 관한 내용이다. 소년은 유대인이요 소년을 받아들이는 어른은 회교도라는 점에서 요즘 중동사태의 상호 불관용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기 외에도 이 영화는 특히 대사가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워 듣노라면 마음이 부유해진다.
원작은 에릭 에마누엘 슈미트의 소설로 원제는 .이브라힘씨와 코란의 꽃들.’

1960년대 초 파리의 여름. 서민들과 거리의 여인들이 섞여 사는 블러 거리(홍등가 이름이 푸른빛을 뜻하는 블러라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틴에이저인 모모(피에르 불랑제르)는 아버지와 단 둘이 아파트서 사는데 아버지(질베르 멜키)는 오래 전에 집을 나가버린 아내와 모모의 형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린다. 착하고 꿈 많은 모모는 자기를 형과 비교하는 아버지가 못 마땅하지만 늘 직장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위해 저녁을 마련한다. 낮에는 창 밖을 통해 유혹적인 창녀들을 탐내며 바라보거나 아래층에 사는 자기 또래의 소녀 미리암을 골려 주는 일로 심심파적을 하고.

모모가 찬거리를 사는 가게의 주인은 나이 먹고 과묵한 이브라힘(오마 샤리프). 이브라힘은 어두컴컴한 가게 계산대 뒤에 앉아 코란을 읽으면서 거의 매일 같이 자기 가게에 들르는 모모를 눈여겨본다. 그리고 모모가 물건을 슬쩍해도 모른 척한다.
이브라힘은 외로운 모모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이 소년을 자기 품안으로 거두어들이려고 마음 문을 연다. 모모도 이 관대하고 지혜롭고 또 부드러우면서도 믿음과 생명력과 유머가 있는 이방인의 친절에서 친아버지가 주지 못하는 기쁨을 찾는다.


모모의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버리자 이브라힘은 모모를 자기 아들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브라힘은 그동안 번 돈으로 빨간 컨버터블을 산 뒤 아들 모모와 함께 유럽을 거쳐 자기 고향인 터키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이 여행서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문화와 습관들을 만나고 경험하는데 모모는 이 여행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변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이브라힘의 가게 앞에서 찍는 영화촬영 장면. 영화 중 영화는 장-뤽 고다르의 ‘경멸’인데 이 영화 중 브리짓 바르도역을 이자벨 아자니가 맡아 캐미오로 나온다. 또 모모가 미리암과 함께 연습하는 매디슨 댄스도 역시 고다르의 또 다른 영화 ‘국외자들의 무리’(위크엔드판 무비 가이드면 참조)의 댄스장면을 본 딴 것이다. 그리고 모모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아름답고 육감적인 창녀 실비에게 모모가 동정을 바친 뒤 모모가 흑인 창녀 파투 등을 통해 육체적으로도 성숙하는 에피소드도 다정다감하다.

파리 거리의 옛 모습과 유럽 여러 나라의 이국적 풍경을 그림처럼 찍은 촬영도 곱다. 뛰어난 것은 이 영화로 데뷔한 불랑제르와 샤리프의 연기와 상호조화. 특히 샤리프가 그의 깊은 눈처럼 깊고, 진실하고 느낌이 충만한 명연기를 해 마치 이브라힘역은 샤리프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과 믿음 찾기에 관한 친밀하고 사려 깊고 심오한 아름다운 영화로 부모들이 지각 있는 자녀들과 함께 보기를 적극 권한다. 프랑솨 뒤페이롱 감독(오마 샤리프 인터뷰 위크엔드판 참조). R. Sony Pictures Classics. 11일까지 선셋5(323-848-3500)서 상영한 뒤 내년 2월13일 정식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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