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1 Grams ****1/2

2003-11-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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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데뷔작 ‘개같은 사랑’(Amores Perros)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투의 첫 영어영화로 운명과 우연이 판을 치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런 암울함 속에 희망이 서광처럼 비친다.

차 사고라는 우연을 계기로 서로 모르는 사람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교묘하게 뒤섞어 서술하는 방식이 ‘개 같은 사랑’을 닮았다. 칙칙하고 바랜 색깔을 바탕으로 을씨년스럽고 절망적이요 또 감정 짙은 이야기가 빠른 편집에 의해 리드미컬하게 펼쳐지는데 손에 든 카메라로 찍은 촬영이 역동적이다.

HSPACE=5

컬러와 촬영이 영화의 성질과 구조를 잘 살리고 있다. 죽음을 대 전제로 구원과 희망, 폭력과 복수, 사랑과 용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명을 예찬한 뛰어난 작품이다.


대학 수학교수인 폴(션 펜)은 중증 심장병 환자로 인공수정 임신을 원하는 아내 메리(샬롯 갱스부르)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과거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한 크리스티나(네이오미 와츠)는 남편과 어린 두 딸과 행복하게 사는 가정주부. 그리고 알콜 중독자이자 전과자였던 잭(베네시오 델 토로)은 기독교로 갱생한 불우 청소년 담당 카운슬러. 어린 두 남매를 키우는 잭의 아내 매리앤(멜리사 리오)은 거의 동물적 본능으로 남편에게 충실한 터프 레이디다.

어느 날 잭이 몰던 차에 크리스티나의 남편과 두 아이가 받혀 사망하면서 이 서로 전연 관계가 없던 세 사람의 운명이 얽혀든다. 현장서 달아났던 잭은 후에 자수, 짧은 옥살이 끝에 출옥하나 죄책감에 시달리다 못해 집을 나간다. 그리고 갑작스런 비극에 오열하는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심장을 타인에게 기증키로 한다. 이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이 폴. 폴은 사립탐정을 고용, 자기 심장의 주인공을 찾아낸 다음 크리스티나의 슬픔을 깊이 동정하면서 그녀에게 다가선다.

폴과 크리스티나는 결국 사랑에 빠지고 폴은 가족의 복수를 절규하는 크리스티나와 함께 잭을 처치하려고 그가 묵고 있는 후진 모텔에 투숙한다. 현재가 갑작스런 과거와 미래에 휘말려 오버랩 되는 압도적인 서술방식을 사용, 감정이 극적으로 팽창한다. 죽음과 용서와 희망의 피날레가 거칠도록 아름답다.

오스카상 수상자요 후보들인 델 토로, 펜, 와츠 및 리오의 연기가 강렬하게 심오한데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개발도 훌륭하다. 제목은 사람이 죽는 순간 잃는 무게를 말한다. R. Focus. 아크라이트(323-464-4226). 그로브 스테디엄(323-692-0829), 샌타모니카 뉴윌셔(310-28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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