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사메무쳐’가 ‘뼈에 사무쳐’대는 이유

2001-09-1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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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일모레 30대로 접어드는지라, 행여나 질세라 소위 이 땅의 중년들을 위한 영화임을 표방한 ‘베사메무쵸’를 훤한 대낮에 냉큼 보러 갔다. 간단히 말하겠다. 전광렬(철수), 쪼다 같으니라구. 인신공격의 이유는?


일. 자기문제 결국 마누라가 풀어주니까 괴로워하는 아내한테 어디서 감히 무덤까지 갖고 가지 그랬어?

이. 동네아줌마들한테 다 들키기까지 했으면 재벌마누라랑 제대로 끝내놓고 돈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삼. 그래도 하다가 만 것 같던데,그럼 따져서라도 돈의 반이라도 그 년한테 뜯어야 되는 거아니냐구.

사. 그냥 그렇게 회사에서 잘리는 바보가 어딨어? 고소해야지.

오. 괴로워서 술 처먹으면 용서 받냐? 술로도 피하지 말라구.

육. "그래도 내가 돈 많이 벌어다 주니까 그런 거 아냐”라는 멘트가 어떻게 그리도 뻔뻔스럽게 나올 수 있을까? 이미숙(영희)이 하는 4명의 육아 및 가사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증권사 과장보단 훨씬많을 것이고 노동강도는 최소 2배 이상인데.

칠. 매주 수요일 엉거주춤 엉성하게 섹스하는 꼬락서니하고는...이미숙의 가짜 오르가슴 표정을 보라.

팔. 피자한판이나 케잌 한 박스로 온갖 가장 생색 내는 도식성, 정말 식상하구나.

구. 자기도 재벌마누라한테 몸 판주제에(그것도 제대로 못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으면서),왜 마누라의 부정에 대해서는 감당을 못하냐구.


마지막으로. 진짜로 단칸방으로 쫓겨나서 만년 빚지옥에서 시달리는 것이 아내의 하룻밤 외박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즉, 남자로서의 자존심 손상과 질투)보다 훨씬 고통스럽다는 것을 절대 알리 없는 이 나이브한 감상주의.

다시 반죽해서 요약하자면, 주인공 철수는 첫째 아무데도 쓸데 없는 자존심, 둘째 죽었다 깨도 못 버리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셋째, 멀쩡할 때는 알량한 정의감과 다급할 때는 치사한 온정주의에 호소 (비밀자료 입수는 엄연한 불법-그럴바에야 남들 작전 할 때 같이 하는 게 낫지)하는 유치찬란함 마지막으로 결국 응석부릴 것은 다 부리는 우리들의 귀한 아들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것이 진정 우리 40대 남자들의 초상이던가? 예고편이 끝나고 캄캄할 때 들어간나는, 영화가 끝나 불이 켜져 주변을 훑어보고 화들짝 놀랐다. 먼저, 100% 아줌마들이라서, 그리고 나 빼놓고는 모두들 왠지 흡족한 표정이어서 또 한번 놀랐다. 아, 울고싶다.

임경선/연애칼럼니스트 catwoman@postm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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