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의 수직광선’(The Vertical Ray of the Sun)★★★★(별5개 만점)
햇살의 애무에 몸을 떠는 잔물결처럼 감정의 파랑이 마음을 적시고 드는 아름답고 고요하고 시적인 세 자매의 이야기다.
‘초록 파파야의 향기’(1993)와 ‘시클로’(1995)를 만든 파리에 사는 베트남 감독 트란 안 훙(각본 겸)의 세번째 작품인데 분위기와 색채미가 ‘초록 파파야’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번 것은 그 것보다 이야기가 충실하고 인물 묘사도 훨씬 뚜렷하다.
트란은 뛰어난 영상미학자다. 촬영과 색깔과 화면 구도(화가의 그림 같다)가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완벽한 영상소설가이다.
베트남의 뜨겁고 밝은 태양과 식물과 수목들의 시원한 초록빛이 부딪치며 자극적인 기운을 자아내는 가운데 세 자매의 이야기가 나른하고 부드럽고 또 감각적이요 에로틱하게 펼쳐지는데 서술 속도와 스타일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과 음악이 한가하고 게으르도록 느려 향수감 짙은 오수에 젖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밀과 깨어지듯 맑은 표면 속에는 세 자매의 비밀과 상심, 고뇌와 갈등이 숨어 출렁거리는데 이같은 여인들의 어두운 내면이 과일 속이 드러나듯 조금씩 조금씩 정체를 나타내며 소설처럼 이야기가 엮어진다.
하노이의 문화인 카페주인 수옹(구엔 누 퀸)과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칸(레 칸)과 카페를 돌보는 리엔(트란 누 옌-케)은 세 자매. 리엔은 배우인 오빠 하이(고란 하이)와 한 아파트에서 사는데 근친상간을 연상시킬 만큼 오빠를 좋아한다.
자연사진작가인 남편 쿠옥(추 곡 훙)과의 사이에서 어린 아들을 둔 수옹은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 카페에서 만난 젊은 투안과 오랫동안 연인 사이다(남자를 만날 때 말을 안 하는 수옹의 얼굴을 덮은 검은 베일 위로 투안이 정성껏 키스를 하는 것을 비롯해 두 사람의 러브신이 고혹적이다). 한편 쿠옥은 사진을 찍으러 바닷가 시골로 떠나는데 그는 시골에 여인과 어린 아들을 두고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칸의 남편 키엔(트란 만 쿠옹)은 첫 소설을 막 끝내려는 작가. 키엔은 소설의 끝을 마무리짓기 위해 사이공으로 간다. 칸은 남편이 떠나기 전 그에게 자신의 임신을 알려준다. 리엔은 밤마다 오빠 침대로 들어와 자며 자기 애인이 오빠 같기를 갈망하는데 거울 앞에서 자기 배를 보면서 상상임신을 즐긴다.
서로 모두 비밀을 갖고 있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그들의 칠흑 빛 긴 머리칼을 물에 감은 뒤 서서히 빗질해 내리듯 한가롭게 서술되는데 고통과 배신과 슬픔까지도 격하지 않고 체념에 가까운 너그러움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옹은 과거를 청산하겠다고 고백한 쿠옥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투안과 이별한다. 그리고 칸은 남편에 대한 공연한 의심에 눈물을 흘리고 리엔은 즐겁게 문을 나선다. 세 자매의 이야기가 삶처럼 계속된다는 식으로 끝난다.
아름다운 세 자매(연기가 아주 자연스럽다)의 상호 및 타인과의 관계와 성격과 감정 묘사가 섬세하고 자상한데 서술 스타일이 너무 착 가라앉아 때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상미에 밀리는 기분이다. 영상미는 엄격하니 검소하면서도 풍성한데 이와 함께 새소리 벌레소리 등 자연 음과 루 리드 등의 발라드풍의 노래 그리고 무성과 목가풍의 음악을 적절히 혼성, 뛰어나게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등급 PG-13. Sony Pictures Classics. 뮤직홀(310-274-6869), 유니버시티6(949-854-8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