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름 극장가 ‘여성파워’ 넘친다

2001-07-0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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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영화 속에서 줄곧 보아왔던 `터프한 남성과 연약한 여성’의 공식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올 여름 극장가가 `여성 파워’로 넘치고 있다. 개봉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터프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신라의 달밤’의 헤로인 김혜수는 `내숭형 여장부’로 나온다.

밥 먹듯 경찰서를 드나드는 남동생을 위해 경찰관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하다가도 경찰서 밖에만 나오면 본색을 드러낸다. 알고보니 태권도 유단자라 ‘복날 개 패 듯’ 남동생을 혼내주는데 혼이 난 남동생은 누나만 보면 눈을 휘둥그래뜬 채 줄행랑을 친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엽기적인 그녀’의 여주인공 전지현은 또 어떤가. 취미는 술 먹고 시비걸기. 평소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데다 정의감까지 넘쳐 사사건건 남의 일에 참견해 화(禍)를 자초한다. 발이 아플 땐 서슴없이 순진한 남자 친구의 운동화를 뺏어 신고, 애인의 귀를 잡아당긴 채 끌고 가기도 한다.

’조폭마누라’에서 `조폭’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신은경은 몸에 문신까지 한 채 온몸을 던진 액션 연기를 펼치며 올 여름 극장가를 `접수’할 태세다.

이런 현상은 외국 영화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매트릭스’의 공중 멈춤 발차기를 선보이며 새로운 `공주형’을 보여주는 ‘슈렉’의 피오나 공주나 몸에 착 달라붙는 민소매 티셔츠와 핫팬츠 차림으로 양 허벅지에 쌍권총을 찬 채 지구 곳곳을 누비는 ‘툼레이더’의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도 빼놓을 수 없다.

14일 관객을 찾아갈 영국 영화 ‘브랜단 엔 트루디’의 여자 좀도둑 `트루디’도 만만치 않다. `밤손님’트루디는 성가대와 영화, 학교 밖에 모르던 착실한 중학교 교사 브랜단의 혼을 쏙 빼놓은 뒤 급기야는 그의 누나 집을 터는데까지 그를 끌어 들인다. 군화 같은 신발과 무시무시한 연장, 얼굴을 가리는 검은색 모자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처럼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영화가 잇따라 등장함에 따라 그동안 남성 위주의 영화에 양념처럼 얼굴을 내비치던 여배우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최근 영화 속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다양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한 쪽에서는 ‘선물’의 이영애 같은 `전형화된’ 캐릭터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여성들의 자의식과 능력이 상승된 만큼 이제 상업영화라 해도 현실의 목소리를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단순한 `상업주의의 발로’라는 곱지않은 시각을 보내기도 한다. 독특한 캐릭터를 찾다보니까 `액션 장르에 여자가 주인공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식의 `장르비틀기’ 차원에서 시도된 것이지 결코 페미니즘 차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이명인씨는 "’신라의 달밤’의 김혜수는 남자들의 우정을 혼동시키기위해 `내숭녀’로 등장한 것뿐이지 고정관념을 탈피한 것은 아니"라며 "한국 영화 속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오히려 퇴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 fusionjc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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