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각·백악관 주요 보직 ‘초스피드’ 인선…즉흥적·파격적 인사 스타일 여전
▶ 성비위 등 부적격 논란 잇따라…법무장관 지명자 사퇴 후 추가 낙마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집권 2기 행정부를 구성하는 데 거침없이 속도를 내고 있다.
대선일 다음 날인 지난 6일 승리를 확정한 때부터 23일까지 3주도 되지 않아 새로운 행정부 내각과 백악관 주요 인선을 거의 마무리했다.
일례로 15개 부서 장관 중에서 이날까지 발표되지 않은 자리는 농무부 장관 한 자리뿐이다.
이는 역대 정권은 물론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했던 지난 2016년 대선 이후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라는 평가다. 8년 전에는 11·8 대선에서 승리한 뒤 12월이 돼서야 첫 내각 인선을 발표한 바 있다.
◇ 경륜보다 충성, 국민통합보다 측근 우선…'플로리다·폭스·세대교체'도 키워드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2기 인선 특징은 '충성파'라는 단어로 우선 요약된다.
이번 대선에서 전면에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강력하게 추진할 측근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즉흥적이고, 관례의 틀을 깬 '과격한' 정책 결정을 제어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한 집권 1기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은 사라지고, '초강경 보수' 대선 공약을 가감 없이 실현할 '예스맨' 위주로 인선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인사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인선에 시동을 건 것은 대선일 이틀 뒤인 지난 7일이다. 대선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수지 와일스(67)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한 것을 시작으로 주요 인선 발표가 줄줄이 이어졌다.
CNN 방송에 따르면 23일 기준으로 부통령 당선인인 JD 밴스(40)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포함해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을 완료한 2기 행정부 핵심 보직 후보자 및 내정자는 총 35명에 달한다.
정책 분야별로 보면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국경 봉쇄 및 불법이민자 추방'에서는 국토안보부 장관에 크리스티 놈(53)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국경 차르'(border czar)에 톰 호먼(63)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백악관 정책 담당 부(副)비서실장 겸 국토안보 보좌관에는 불법 이민 강경파인 스티븐 밀러(39) 전 백악관 선임 보좌관을 지명했다.
외교·안보 분야도 핵심보직은 진용을 갖췄다.
트럼프 당선인은 국무부 장관에 대중(對中) 강경파로 꼽히는 마코 루비오(53) 연방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을 지명한 것을 필두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인 마이크 왈츠(50) 하원의원, 국방부 장관에 피트 헤그세스(44) 폭스뉴스 진행자, 보훈부 장관에 1차 탄핵심판 변호인단 일원인 더그 콜린스(58) 전 하원의원, 국가정보국장(DNI)에 현역 군인인 털시 개버드(43) 전 민주당 하원의원,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집권 1기 4년 차 때 DNI를 지낸 존 랫클리프(59)를 각각 발탁했다.
아울러 유엔 주재 대사에 엘리스 스터파닉(40) 하원의원, 주이스라엘 대사에 집권 1기 백악관 대변인이자 현 아칸소 주지사 사라 허커비 샌더스의 부친 마이크 허커비(69) 전 아칸소 주지사, 중동 특사에 부동산 사업가이자 트럼프 당선인의 골프 친구인 스티브 위트코프(67) 취임식 공동준비위원장이 내정됐다.
경제 분야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재무부 장관에 스콧 베센트(62) 헤지펀드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를, 상무부 장관에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인 하워드 러트닉(63) 정권 인수팀 공동위원장을 지명했다.
또 에너지부 장관에는 석유·가스 사업가인 크리스 라이트 리버티에너지 설립자 겸 CEO가 지명됐으며, 교통부 장관에는 검사 출신이자 폭스 계열 TV 진행자 출신인 숀 더피(53) 전 하원의원을 내정됐다.
노동부 장관에 로리 차베스-디레머 하원의원(56·오리건)이,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에 스콧 터너(52) 전 백악관 기회 및 활성화 위원회(WHORC) 위원장이 발탁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내무부 장관에 더그 버검(68) 노스다코타 주지사를 지명하면서 그에게 새 행정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할 국가에너지회의(National Energy Council) 의장직도 맡겼다.
올해 대선 과정에서 최측근 중에 핵심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53) 테슬라 CEO와 인도계 출신 기업가이자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비벡 라마스와미(39)는 차기 행정부에서 신설될 '정부효율부'의 공동 수장으로 낙점됐다. 다만 정부효율부가 내각 조직이 될지, 정부 자문기구로서 활동할지는 유동적인 상황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법무부 장관에는 1차 탄핵심판 변호인 중 한 명인 팸 본디(59) 전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을, 보건복지부 장관에는 무소속 대선 후보에서 물러나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70)를, 교육부 장관에 프로레슬링계 억만장자이자 집권 1기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린다 맥마흔(76) 정권 인수팀 공동위원장을, 환경보호청장(EPA)에 리 젤딘(44) 전 하원의원을 각각 지명했다.
또 공공의료보험서비스센터(CMS) 센터장에 유명 건강 프로그램 '닥터 오즈 쇼' 진행자 메멧 오즈(64) 박사,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단장 겸 의무총감에 재닛 네셰이와트 박사,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에 데이브 웰던 전 하원의원, 식품의약국(FDA) 국장에 마티 마카리 존스홉킨스대 외과 전문의를 발탁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충성파'라는 것 외에도 트럼프 당선인의 2기 행정부 특징을 알 수 있는 인선 키워드들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이자 정권 인수팀이 꾸려져 있는 마러라고가 위치해 정권 탄생의 보금자리가 된 '플로리다 출신'이 많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중국, 북한, 이란 등에 강경한 '매파'들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
보수성향 언론의 대표주자인 폭스 계열 뉴스 및 TV쇼 진행자와 고정 출연자들도 트럼프 당선인의 호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며, 대선자금 마련에 공을 세운 억만장자 사업가 출신도 꽤 된다.
또 흑인은 장관 후보자 가운데 단 1명 발탁되며 대체로 백인 위주의 인선이 이뤄졌고, 30대부터 50대 사이의 비교적 '젊은' 인사가 대거 중용되면서 확연히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도 주목된다.
◇ 인선 논란·잡음도…성추문에 1명 낙마, 머스크의 막강 영향력은 '주춤'
이처럼 속도감 있게 차기 행정부 구성이 진행 중인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의 즉흥적이고 파격적인 인선 스타일로 인해 논란과 잡음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주요대상 인선 과정에 역대 정권에서 적극 활용했던 FBI의 인사검증을 대부분 우회한 것으로 알려져 이런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애초부터 국민여론이나 정치권의 반대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이를 감내하면서 밀어붙이겠다는 속내였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됐다가 미성년자 성 매수 등의 의혹이 불거졌던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은 지명 8일 만에 자진 사퇴하며 첫 낙마자로 기록됐고, 헤그세스 국방장관 내정자도 과거 성폭행 의혹이 불거져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이외에도 각종 논란으로 상원 인준이 불투명한 후보자도 여럿 있다.
맥마흔 교육장관 후보자는 과거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를 운영할 당시 10대 링보이들이 WWE 고위급 직원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는 것을 알고도 묵인한 의혹으로 소송에 휘말렸고, 코네티컷주 교육위원으로 지명될 당시 학력을 잘못 기재해 사임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 후보자는 백신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물에 든 화학물질 등과 관련해 각종 음모론을 제기해 문제가 됐으며, 새끼 곰 사체를 뉴욕 센트럴파크에 유기하고 고래 사체 머리를 자르는 등 기행을 펼친 것으로 드러나 국민 건강을 총괄하는 수장으로 적격하냐를 놓고 논란이 적지 않다.
개버드 DNI 내정자의 경우 러시아나 시리아 등 미국의 적국 독재자들에 대한 호의적인 과거 언행 탓에 부적절 인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게이츠 전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어 추가 낙마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CNN은 미국에서 최근 30년 동안 주요 보직 지명 후 중도에 사퇴한 사람은 모두 12명이며 트럼프 집권 1기 4년간 4명이 낙마해 어느 정권보다도 많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게이츠 사퇴 후 더는 추가 낙마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이들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여론이 악화하면 추가 사퇴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내각 주요 인사들의 인준 권한을 가진 의회 상원에서 다수당이자 트럼프 당선인의 '친정'인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광폭 인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견제 역할을 강조하고 나서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하나 트럼프 2기 행정부 구성 과정에서 눈여겨볼 점은 대선 이후 트럼프 당선인과 그 누구보다 밀착하면서 '공동 대통령'으로까지 언급됐던 머스크가 인선에서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무장관 후보자 지명이 대표적이다. 머스크가 재무장관으로 한껏 지지했던 러트닉은 상무장관으로 밀렸고, "늘 해오던 대로의 선택"이라고 깎아내린 베센트가 경제 정책 1인자인 재무장관에 낙점받으며 머스크는 체면을 구겼다.
아울러 머스크는 법무장관 후보자였던 게이츠 전 의원에 대해 그의 사퇴 이틀 전 "정의의 망치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워 사실상 인선 강행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사실상 종용으로 게이츠가 스스로 물러나면서 머쓱해졌다.
또 머스크는 높아진 위상이나, 인선 및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 등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오랜 측근과 참모, 고문들과 알력을 빚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이들과의 관계 설정도 주목된다.
최근에는 머스크가 트럼프 당선인의 오랜 참모인 보리스 엡스타인과 내각 인선을 두고 '권력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보도까지 터져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