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대의 공감이 낳은 트로트 열풍

2020-03-23 (월) 07:44:04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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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이면 한국판 신문을 읽는다. 그리고 인근에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에는 한국 방송을 듣는다. 그런데 가끔 그들이 쓰는 용어를 보면 새로운 유행어 같은데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때기 있는가 하면, 글을 읽기는 하지만 그 글 자체가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론사 책임자들에게 한번 불평이라기보다 권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내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혀낸 통계치가 없어서 어쩌면 나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 워싱턴의 한국어의 신문을 읽는 사람의 30% 이상이 70대의 나이일 것 같고, 60세 이상이면 아마도 70%가 훨씬 넘을 것 같다. 그리고 40대 미만의 사람들이 얼마가 될까? 한국에서 파견된 직장인 같은 사람 몇 말고는 거의 없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신문을 읽는 사람의 대다수가 60세 이상일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기사 내용의 비중과 사용하는 단어들이 다수의 독자들인 그분들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며 그 점을 유의했으면 한다는 말을 권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 편성에서 음악 프로시간에 방송되는 음악을 듣는 시청자의 대부분이 어느 장르의 음악을 선호하는지 연령을 백분율로 계산해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내 생각으로는 힙합, 발라드, 외국의 번안 곡보다 뽕짝음악이라고 뒷전에 처진 음악이랄까 아니면 그 시대보다 조금 과거 시대를 누비던 노래 즉 트로트를 선호하는 청취자들이 더 많을 것 같다. 내 생각이 틀렸을까? 아직도 트로트가 뽕짝 운운하면서 천대받고 있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며 신문이나 라디오 관계자에게 구독자나 시청자의 연령을 고려하면서 편성을 하면 어떻겠느냐 말하고 싶었던 참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도저히 믿기 어려운 광풍이 일어났다. 찬밥신세라고 여겼던 트로트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TV 어느 채널을 틀어도 온통 트로트이다. 그리고 식당이거나 어떤 작은 모임에서나 나이를 불문하고 만나서 떠들어대는 화제가 온통 트로트 이야기뿐이다. 나도 어느 사이 그 화제에 끼어들면서 최소한 10명 이상의 새로이 떠오르는 트로트 가수들의 이름을 들먹거리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현상일까?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물어 보았다.

“힙합, 아이돌, 발라드, 댄스음악, 외국 번안곡 등에 이제 좀 식상할 때가 되었는데 젊은 친구들의 한 계단 높은 뽕짝으로 붐이 일어난 것이 아니겠어.”
“‘놀다’라는 말에서 노름, 놀이(뱃놀이 등) 노래 라는 단어가 나왔지. 세계 모든 나라 무덤들을 보면 전부 천국 내세(來世)가 주류를 이루는데 고구려 무덤에는 춤추는 그림이야. 한국 사람들 DNA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몸에 배어있지. 가요의 붐은 결국 한국인의 DNA 출현이야.”
“밥 딜런이 자기 나라 컨트리 송 가사로 노벨상을 받았지. 그런데 말이야. 우리나라 가요 어느 것이라도 밥 딜런의 가사에 비해 손색없는 가사야. 나는 가요 노래에다 그 가사에 반해 있어.”
“한국에 그렇게 숨은 실력의 무명 가수들이 많은지 몰랐어. 그리고 C 방송의 트로트 방영 프로그램의 PD들 같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네고 싶어.”

그럼 나의 생각은? 좌절감, 우울한 마음, 스트레스 등으로 침체된 사회분위기에서 군고구마 장사, 조실부모하거나 결손가정, 일용직, 배고픔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여 큰 무대에 서서 노래를 열창하는 그들 무명가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성취에 대리 만족을 느끼며 흥(興)과 한(恨)을 승화시키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트로트는 현 사회의 정신건강의 분명 훌륭한 치유제일 것이다. 나는 트로트의 광풍을 흐뭇하게 보고 있다. 브라보 트로트!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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