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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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값

2017-12-22 (금) 한재홍/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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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해가 저물어 간다. “세월을 막아설 장수가 있다던가?”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림이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며 한해를 마무리 하고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이름값, 아니 얼굴값을 하고 살라는 말씀을 많이 듣고 살아왔다. 얼굴이란 우리의 인격과 마음이 담긴 그릇이다. 우리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어야 하고 바른 인격자의 모습이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얼굴보다는 낯짝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이는 바르게 살지 못하였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삶이 아닌 가 싶다.

어릴 적 어른들이 “저놈 낯짝 한 번 두껍네.” 하며 야단을 치시던 말씀을 옆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이는 결코 좋게 들리지 않는 말이다. 이 해를 보내면서 우리도 올 한해 어떤 얼굴을 보이며 살았는지 돌아보면서 마무리를 한다면 더 좋은 새해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
어느 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자랑삼아 예수님께 이런 보고를 했다. 우리 앞에서 귀신들이 떠나고 질병의 치유가 나타나고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고.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다. “귀신이 떠나는 것 보다 네 이름이 천국에 새겨진 것이 더 귀한 일이다.” 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귀하다는 뜻으로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이따금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본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얼굴에 사랑과 기쁨이 넘쳐난다. 반면 자기 뜻을 이루려 사는 사람의 모습은 모든 것을 숨겨두고 산다. 그래서 뻔뻔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 두고 소위 ‘낯짝’이라 칭한다. 열매로 나무를 알듯이 우리도 삶의 열매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정말로 섬기며 낮은 자리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일까.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거울 앞에서라도 자신의 자화상을 한번 보았으면 한다.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을 이루려 인간을 입고 친히 우리를 찾아와 주신 성탄을 앞두고 우리도 지난날 행한 잘 잘못을 되돌아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 위에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무데나 포장해 자기의 낯짝을 얼굴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한재홍/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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