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셰익스피어를 알고 싶다.

2016-04-23 (토) 정정숙 전직 공립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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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23일은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가 세상을 떠난 지 4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려서 읽은 세계 위인전에서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생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참으로 기이했었다. 요즘 알고보니 그가 4월26일에 세례를 받은 기록이 있는데 당시에는 영국에서 세상에 태어난 지 사흘만에 세례를 주기 때문에 그의 생일을 4월23일로 추측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문과를 택한 내게 셰익스피어는 필수였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숙제를 제출해야 되는데 16세기의 어려운 영어를 읽을 실력도 안 되고 시간도 없어서 여석기 교수의 번역을 읽고 리포트를 썼었다. 작품이 비극인 것과는 상관없이 말장난 때문에 많이 웃었다.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웃을 여유를 유발하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의도였을까? 지금도 다 시 한번 그 번역본을 읽어보고 싶다.

졸업한 후로는 셰익스피어를 잊고 살았는데 미국에 이민 오자마자 1980년 한국일보에 햄릿이 어느 나라 왕자인가 묻는 퀴즈가 있어서 심심파적으로 '덴마크'라고 답해 보냈다. 정답자 8명중 유일하게 뽑혀서 '여보 주얼리'가 제공하는 목걸이와 팔찌를 한국일보사로 가서 받았었으니 나와 한국일보사와의 인연은 알고 보면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세 살된 딸을 무릎에 앉히고 찍은 신문에 난 사진을 잘 보관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하느님만을 향한 관심이 인간으로 옮겨갔던 르네상스의 막바지에 태어났다. 그는 18세에 26세 여인과 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고는 혼자만 고향을 떠나 런던에 정착한다. 세익스피어는 유명 배우이자, 극작가, 극장 주주가 된다. 당시 영국은 해상에서 최강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시킴(The Defeat of the Spanish Armada)으로(1588년) 세계강국으로 부상해서 나중에는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1580년~1600년).

따라서 영국문학도 번창하게 되었다. 시민들의 큰 오락은 극장가는 것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과 뒤를 이은 제임스 왕은 배우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공연을 시켰고 제임스 왕은 셰익스피어 극단의 후견인이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연극작품을 쓴 것은 왕중의 귀족들과 관중을 즐겁게 해주고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글러브라는 원형극장의 수입의 십분의 일에 해당되는 돈이 그에게 돌아왔다. 페스트가 유행해서 극장이 문을 닫자 공연 대신 본격적으로 연극작품과 시만을 쓰기 시작해 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극작가로 유명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Stratford-upon-Avon에 고향에서 두 번 째로 큰 집을 사들여 40대 후반, 런던을 떠나 죽기 전 몇 년간은 그 집에서 살았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등장인물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심리묘사가 폐부에 깊이 와 닿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그만큼 인간의 내면에 통달했기 때문일 게다. 재치 있고 좋은 성품을 가진 셰익스피어는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신사로 통했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연극배우였던 그는 인물도 햄릿처럼 좋았다고 초상화들이 전한다.

아직도 나는 셰익스피어 영어 원본을 읽을 만한 실력은 되지 못한다. 주해를 읽어가며 볼만큼 참을성도 없다. 아무튼 셰익스피어는 어렵다. 그런데 얼마전에 뉴저지 도서관에서 'No Fear Shakespeare'를 만났다. 세익스피어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왼쪽은 원본이 있고 오른쪽은 현대영어본이 있어 '햄릿'은 다시 읽고 '맥베스'는 처음으로 읽고 즐겼다. 전에 읽었던 '한여름 밤의 꿈'도 빌려다 놓았다. 올해가 400주년이라서 그의 작품들을 대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여전히 펀(동음 이의어 익살)으로 이루어진 재담과 예리한 심리묘사가 나를 매료시킨다. 경이롭다. 그가 쓴 시도 최고의 로맨스 시로 각광을 받는다지만 시를 잘 모르는 나는 그것까지는 엄두가 안 나고 드라마에 충실하려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16편, 역사극 10편, 비극 12편 모두 38편중 올해 몇 편이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No Fear Shakespeare'를 많이 구해서 보아야겠다. 그래서 그의, 아니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봐야겠다.

<정정숙 전직 공립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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