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스로 불 지르는 숲”

2016-01-21 (목)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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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의 옛 가지에는 새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매년 봄이 되어 새로 나온 가지에만 열매가 맺힌다. 겨울철 휴지기에 농부들은 포도원에 나와 치열하게 가지치기를 한다. 가지치기를 많이 한 포도나무일수록 이듬해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도약, 새로운 창조, 새로운 변화의 열매를 얻으려면 비움의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한다. 과감하게 옛 것을 잘라버리고 새로운 것을 택하는 일일신(一日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일에 모범을 보였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쫒아가노라.” 한때 거대한 중국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큰일을 하려면 세 가지를 가지치기해야 한다. 첫째 이름, 둘째 돈, 셋째는 나이다.”


과밀한 숲에서 자연 발생하는 산불도 일종의 자기 비움이다. 산불은 늙은 숲이 젊은 숲으로 전환되는 변혁의 모티브다. 1890년 이후 미국 산림청은 산불을 단 한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산림정책을 시행한 일이 있었다. 이 정책에 의거하여 토지 관리사무소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을 포함한 모든 산불을 완전하게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산불을 적극적으로 대처하다보니 예상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숲은 급속하게 과밀화, 노령화 되었다. 젊은 나무들로 대치되지 못한 비대한 숲은 잘 타는 물질이 고밀도로 축적된 초임계상태에 도달했다.

이제 숲은 번갯불 한 번이나 담배꽁초 하나로도 거대한 산불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자연발화물질이 되었다. 초임계상태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대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매 10년 마다 스스로 불을 지르는 숲의 자기조절 기능을 인위적으로 제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산림청은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주 수종인 로지폴소나무(lodgepole pine)군집은 스스로 불 지르는 숲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로지폴소나무의 씨앗은 두꺼운 기름 층으로 겹겹이 쌓여 있다. 표면이 잘 썩지 않아 발아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산불이 일어나야 비로소 씨앗의 표면이 벗겨져 나가면서 발아가 시작된다.

안정된 숲 생태계의 지속은 결코 득이 아니다. 숲의 안정이 오래 보장되면 숲은 과밀화, 노후화의 길을 걷는다. 면역력도 급속히 떨어진다. 웬만한 병균과 해충의 공격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숲은 5세기의 로마제국처럼 어이없이 자멸하고 만다.

지혜로운 로지폴소나무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숲이 늙으면 스스로 불을 질러 자신을 비운다. 숲을 태울 때 숲 안에 창궐하던 병균과 해충은 모두 사라진다. 그동안 발아되지 않았던 씨앗들은 자기들이 일으킨 불길을 이용하여 하얗게 싹을 틔워 동령림(同齡林)의 새 시대를 열어나간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보라. 속이 텅 비어 있다. 공중을 나는 새는 뼈조차 속이 텅 비어 있어서 비행이 수월하고 가볍다. 인생의 숲을 견고하게 세우려면 노후화 된 숲을 과감하게 불태우는 비움의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리더인가. 스스로를 불태워 새 시대를 열어나간 사도 바울과 로지폴소나무에게서 창조적 파괴의 지혜를 배우라. 자강불식, 일일신의 비밀을 터득하라.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시대는 그런 리더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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