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대의 마지막 말은?

2015-12-28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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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는 ‘빈민의 성자’라고 불린다. 동경 니가와(新川) 빈민굴에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돕고 전도하였다. 그는 죽음이 가까웠을 때 “이것으로 됐다(고레데 요시)”하고 짧게 읊조렸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자기 인생에 대한 만족감이 스며있다. 아쉬움 없는 개선가(凱旋歌)와 같다.

풍운아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에 “나의 프랑스, 나의 군대, 나의 조세핀!”하고 말하고, 시인 괴테는 “창문을 열어다오. 빛을 빛을.”하고 읊었으며, 음악가 베토벤은 “친구여 박수를. 희극은 끝났다.”하는 말을 남겼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운명할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다. 사명을 완결하였다는 뜻이다.

왈소 수용소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핏기 사라진 낯으로 허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때 한 청년이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빛을 볼 수 없게 되겠지만 나는 태양을 믿는다. 사랑하는 그녀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나 나는 사랑을 믿는다.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나는 천국을 믿는다.>


만족이 행복이다. 불만이 불행의 출발점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自足)하기를 배웠노라.”(빌립보서 4:11)고 고백하였다. 여기의 ‘자족’이란 말은 그리스말로는 ‘아우탈케스’인데 매우 어려운 용어이다. 성경 전체에 오직 한 번만 사용된 말로서 직역하면 ‘솟아나는 만족’을 가리킨다. 영어 성경은 self-sufficing 으로 번역하였다. 신앙은 스스로 만족이 솟아나는 샘과 같다는 것이 바울의 신앙고백이다. 자가동력(自家動力)의 비밀이 믿음 속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뉴저지 주 워싱턴 타운십의 경찰관 칼 미텔해머 씨는 지난 20년 동안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매주 번갈아 방문하고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의 고민거리를 대화로 나누는 아마추어 상담자의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미래는 밝습니다. 가진 것을 감사하고 현재를 만족할 줄 알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뉴욕의 젊은 검사들로 조직된 특별타격대(Strike Force)는 그들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복을 깨닫고 만족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경찰이나 법조인들이 아니라 희망을 가르치는 교사와 목사와 신부들이라고 말하였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왕궁의 청소부까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신하에게 새해 선물을 바치도록 강요하였다고 한다. 정말 고약한 여자이다. 거기에 비하여 헨리 7세는 크리스마스 때에 예쁘게 포장한 선물 박스를 신하들에게 내어주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크리스마스 상자’의 전통으로 남아 선물 교환을 하여 새해를 맞는다. 엘리자베스 1세는 국민의 희망을 앗아갔고, 헨리 7세는 백성의 마음을 만족하게 함으로써 소망의 불을 붙였다. 그는 백성의 만족이 곧 나라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차 대전 때, 북대서양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S-4 잠수함이 참몰한 사건이 있었다. 구조대 잠수부들이 해저로 내려갔다. 그들은 잠수함 속에서 울려나오는 몰스 신호를 포착하였다. <아직 희망이 있느냐?>하는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구조대가 답신을 보냈다. <희망 있다. 곧 그대들은 만족하게 될 것이다!> 실상 이 대답을 인류에게 전한 것이 예수였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마음이 부요하고 평화로운 자와 늘 쫓기고 눌려있는 자이다. 전자는 사랑을 주는 자이고 후자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만족이 없는 자이다. 만족이 행복의 문, 사랑하면 진리에 도달한다.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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