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없이 살아갈수만 있다면…

2015-12-12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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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이 살아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육신의 고통. 마음의 고통. 고통이란 통증이다. 통증이란 아픔이다. 육신이나 마음의 통증은 몸을 통해 나타난다. 육체의 아픔이던 마음의 아픔이던 고통을 수반한 아픔은 영혼을 잠식시켜 버린다. 그래서 진통제란 게 있는 걸까. 그러나 진통제는 임시방편일 뿐 원인은 제거 못한다.

무소유의 삶을 몸소 보여준 법정스님은 가끔 뉴욕을 방문하곤 했다. 기자의 입장으로 법정스님의 법회에 참석했을 때 그의 모습은 참으로도 맑았다. 한국전쟁의 고통을 스스로 목격한 그는 대학 3학년때인 1954년 승려 효봉의 제자로 들어가 출가했다. 그리고 입적하기 전 3년 동안 폐암으로 고통을 받다 2010년 3월 입적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며, 불필요한 것들은 내려놓으란 가르침으로 일관하며, 상좌를 두지 않은 채 스스로 밥과 찬을 만들어 들며 진정 이 시대에 무소유의 삶을 보여준 그였다. 그런 그였어도 3년 동안의 폐암과의 투쟁은 그를 고통의 극으로 몰아갔다. 시인 류시화가 그의 투병 시, 함께 했는데 그에게 남긴 법정스님의 말들이다.


<산이 산을 떠나다>란 류시화의 글에 나타난 법정스님의 고통의 말들. 기침이 심했고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체중이 점점 줄어 걷기조차 힘들어졌을 때 스님은 “이 육체가 나를 가둔다” “이 육체가 거추장스럽다”며 고통 해 했단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너무너무 감사해 하여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소설을 통해 잘 알려진 최인호작가. 뉴욕문인협회 초청으로 언젠가 뉴욕에 들어와 문협주관의 행사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날은 협회 회원으로 참가해 그의 강연을 들었다. 소설에서처럼 그는 해박했고 유명작가이기 전, 동네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분위기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그런 그도 2008년 침샘암이 발병했다.

그는 5년간의 암투병을 지나고 2013년 9월 세상을 이별했다. 그도 암투병중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공포를 가졌는지, 그의 말은 하루에도 수백 번 공포에 떤다고 하였다. 목에 혹이 생겨 병원을 찾았더니 암 덩어리라 하여 곧바로 수술을 했단다. 그 후의 암과의 투쟁은 계속됐고 투쟁은 삶과 죽음과의 투쟁으로도 이어지게 됐다.

암투병 3년째가 되던 해 그는 인터뷰에서 “모든 환자는 육체적으로는 병과 싸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영혼적으로도 병과 싸우는 것”이라며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그러다 그는 신(하느님)에게 의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마음대로 하소서”라고 하니 마음의 평화가 7, 공포와 불안이 3이 되었다고 했다.

2008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전쟁 시 아버지를 납북당하는 슬픔을 안고 성 베네딕토수도회에 입회해 수녀가 된 그는 <민들레의 영토>란 첫 시집을 낸 후 지금까지 한국과 세계의 한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한 목사와의 대담에서 “제 인생에서 암이 걸리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한 일이 없었고 더구나 직장암은 착한 암이라 죽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전이가 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이 추상적인 게 아니라 가까운 손님처럼 다가왔다”며 죽을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하면 용서되지 않던 것도 금방 용서가 되더라고 했다.

캐롤이 울려 퍼진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암으로 고통 받고 있을 암 투병 환자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왜, 사람은 병을 통해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암은 왜 존재하는가. 한 평생 큰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이다.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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